이후 그는 1927년 4월 18일부터 1927년 6월 18일을 기하여 장쭤린에게 중화민국 국가원수 권한대행 직위를 위임할 때까지 중화민국 국가원수 권한대행을 또다시 지냈고 이후 중앙 권력 분야에서 평생 야인 신세를 지냈지만 장제스(蔣介石)에게 협력을 하면서 군사 세력을 키워 1928년에 산시성 군벌 옌시산(閻錫山)과 함께 북경을 점령했으나 1929년에 국민당에 대한 독립 선언으로 1930년중원 대전에서 패배해 추방되었다. 그 후에도 중일 전쟁 때 참전했으나 지지를 얻지 못하고 1941년국민당을 마지막 탈당 선언 후 1947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1948년 9월 1일, 중국 공산당의 초청으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차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소련 선박을 타고 귀국하던 중 흑해 연안의 오데사 인근에서 발생한 선박 화재로 인하여 딸(막내딸 펑샤오다)과 함께 사망했다. 타살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를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1] 중국 공산당에서는 "선한 군벌"로 인정하여 1953년 태산에 매장하였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