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허트 경(영어: Sir[1] John Hurt, CBE, 1940년1월 22일 ~ 2017년1월 27일)은 영국의 배우이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배우 중의 하나이며, 다방면에 걸친 여러 경력이 있다.[2]BAFTA, 골든 글로브상 등 많은 상을 받았고, 아카데미상(오스카)에는 두 번 후보에 올랐다. 2012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노리치 예술대학(Norwich University of the Arts) 학장(Chancellor)을 지냈다.
존 허트는 1940년1월 22일영국더비셔주체스터필드에서 태어났다.[3] 어머니 필리스 매시(Phyllis Massey, 1907 ~ 1975)는 아마추어 여배우이자 기술자였고, 아버지 아놀드 허버트 허트(Arnould Herbert Hurt, 1904 ~ 1999)는 수학자로 잉글랜드 성공회 성직자가 되어 셔브룩(Shirebrook)과 선덜랜드의 교구 목사(Vicar)를 지내기도 했다.[4][5] 1937년부터 허트 가족은 더비셔 주로 이사와 있었고, 허트의 아버지는 1945년 더비셔 주 남부 우드빌(Woodville)에 있던 성 스테파노 교회의 목사가 되어 1952년까지 일했다. 어려서부터 허트는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집 건너편에 영화관이 있었지만 허트는 그곳에서 영화 관람을 하도록 허락받지 못했다. 또 부모님은 동네 아이들이 너무 평범한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6]
여덟 살이 될 무렵 허트는 켄트주오트퍼드(Otford)에 있는 세인트 마이클 사립 초등학교(St Michael's Prep School, Otford)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허트는 점차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허트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리하여 참여하게 된 그의 첫 무대는 학교에서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의 소녀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허트는 이 학교에 다닐 당시, 학교의 교사였다가 1981년 은퇴할 때까지 교장으로 재직한 도널드 코맥으로부터 학대를 당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7] 허트의 말에 의하면 코맥 선생은 틀니로 된 앞니 두개를 빼서 혀를 아이들의 입속에 밀어넣고, 까실까실한 턱수염을 아이들 얼굴에 비벼대는 짓을 하곤 했는데, 그런 경험이 자신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8]
허트의 아버지가 링컨셔주그림즈비의 올드 클리 교회로 자리를 옮길 무렵, 열두 살이 된 허트는 링컨 시의 링컨 학교(현 Lincoln Christ's Hospital School)에 진학해 기숙 생활을 했는데, 허트의 형이 다니던 학교에 가려다 입학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허트는 어머니와 함께 클리소프(Cleethorpes)의 레퍼토리 극장에 자주 들렀으나 부모님은 허트가 갖고 있던 연기에 대한 포부를 못마땅해하고, 배우 대신에 미술 교사가 되라고 했다. 허트가 학교 교장선생님인 프랭클린 씨에게 찾아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털어놓자 교장은 웃으며 "너는 연예계로 나설 기회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6]
17살 때 허트는 그림즈비 예술학교(현 이스트코스트 예술 디자인 학교)에 입학해 미술을 배웠다. 1959년 허트는 장학금을 받아 런던의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Saint Martin's School of Art)에서 미술교사 자격증 과정을 이수할 수 있게 되었다.[9] 런던으로 건너간 허트는 장학금이 있어도 수업료와 생활비 때문에 허덕이자, 친구들에게 나체 포즈를 취해달라고 설득해서 그 그림을 그려 내다 팔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갔다. 1960년 허트는 왕립연극학교의 장학제도에 선발되어 2년간 공부했다.[8]
배우 경력
허트의 영화 데뷔작은 《더 와일드 앤 더 윌링》(1962)이지만 단역 출연이었고, 주연으로는 《사계절의 사나이》(1966)의 리처드 리치 역이 처음이다.[10] 1971년에는 《릴링턴 플레이스 10번지》에서 티모시 존 에반스(Timothy John Evans) 역을 맡아 작중에서 자신의 임대주인 존 크리스티(John Christie)가 저지른 살인 사건으로 교수형을 당하는 연기를 펼쳐, BAFTA 남우조연상 후보에 지명되기도 했다. 이후 TV 영화 《벌거벗은 공무원》(1975)에서 쿠엔틴 크리스프(Quentin Crisp) 역을 맡아 명성을 얻고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상 대상도 수상했다.[10] 다음해 허트는 BBC 드라마 《나, 클라우디우스》(1976)에서 고대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 역을 맡아 화려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더 큰 찬사를 받았다. 2002년 TV 다큐멘터리 《나, 클라우디스: 텔레비전 서사시》 (I Claudius: A Television Epic)에 출연한 허트는 원래는 황제 역을 처음 권유받았을 때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허트의 마음을 바꾸고 싶어하던 드라마 감독 허버트 와이즈(Herbert Wise)가 제작전 특별 파티에 초대했고, 그곳에서 나머지 배우들과 제작진과 만나면서 깊은 감동을 받아 배역을 맡게 되었다고 말했다.[11]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사이 허트의 대표 출연작으로는 《에이리언》(1979)에서 작중 첫 희생자로 나오는 케인 역,[주 2] 《리틀 말콤》(1974)의 스크로다이크 역, 《엘리펀트 맨》(1980)의 존 머릭 역이 있다. 특히 《엘리펀트 맨》 출연으로 골든 글로브상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10] 1978년에는 랄프 바크시의 애니메이션 극장판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고른 역의 성우를 맡았다. 이듬해 1979년에는 라스콜니코프가 제작한 BBC의 TV 미니시리즈 《죄와 벌》에 출연했다. 또 1983년에는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괜찮은 흥행을 거둔 샘 페킨파 감독의 영화 《오스터맨의 주말》에서 주연을 맡았고, 같은 해 TV 드라마 《리어 왕》에서 리어 왕(로런스 올리비에 역)의 바보 광대 역도 맡았다.[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