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두(田炯斗, 1955년5월 13일 ~ 2013년3월 25일)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축구 행정가이며, 경남축구협회의 회장과 경남 FC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선수 시절 정교한 킥력과 기습적인 중거리슛에 강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1] 행정가로서는 지역 연고의 대기업들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수완 및 공격적인 마케팅을 위한 선수 영입과 지능적인 스카우팅 감각을 활용한 트레이드에 능했던 것으로 평가되었다.[2][3][4]
생애
경상남도함안군 출신으로, 가야초등학교와 함안중학교를 거쳤다. 이후 마산공업고등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에서 윙어 및 풀백으로 활약했으며,[5][6] 1973년 AFC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선수 선발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7][8] 하지만 축구 선수로 대학교 진학에 실패했으며, 결국 축구 선수로의 목표를 포기하고 1986년 경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한 뒤 가업이었던 농산물 유통업을 이어받았다.[9] 그 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마산시축구협회의 회장을 지냈으며, 1995년 경남축구협회의 제 17대 회장이었던 김정호의 사망으로 인해 회장직이 공석이 되자 잔여임기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제18대와 제19대 경남축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1996년 경상남도 최초의 전국 단위 축구 대회인 '무학기 축구대회' 창설을 주도했으며,[10] 2000년 대한축구협회의 감사로 선출된 이후 2002년 재선출되었다.
이후 2002년 FIFA 월드컵 직후 경상남도를 연고로 하는 프로축구 구단 창단을 추진했으며,[11] 얼마 뒤 창단 결의대회를 갖고 2003년 K리그 참가를 목표로 하였다.[12][13] 하지만 그해로부터 2년 연속 태풍으로 인한 대규모 수해가 발생한 것에 자금확보 문제가 겹쳐 결국 창단이 무산되었으나, 2004년 대한민국 재보궐선거 도중 하순봉의 공약이었던 '경상남도 연고의 프로축구 구단 창단'으로 인해 김태호, 장인태 등 다른 후보들도 동일한 공약을 내세우며 재창단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14][15] 이에
전형두는 김호곤, 이장수, 김용대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재창단 운동을 벌였고,[16] 2005년 개최된 '주식회사 경남도민 프로축구단' 발기인 총회에 참석하였다.[17] 또한 '감독선발위원회'의 위원을 맡아 박항서를 구단의 초대 감독으로 지명했으며,[18][19]김충관과 함께 공동 단장에 임명되었다.[20] 그리고 같은 해 경남축구협회의 회장으로 재신임되어 제20대 경남축구협회 회장직을 수행했으며,[21] 대한축구협회 감사 또한 연임에 성공하였다.[22]
그 뒤 2006년 경남 FC의 창단식에 참석하기도 했으나,[23] 그 해 구단 측으로부터 '방만한 경영 및 인사 전횡' 등을 사유로 사퇴 압박을 받아 다른 임직원들과 함께 사표를 제출하였다.[24] 하지만 같이 사표를 제출한 박창식 대표이사가 김태호 경상남도지사와 면담을 한 내용이 받아들여져 최종적으로 유임되었으며,[25] 2007년 박창식의 후임으로 구단의 제2대 대표이사로 추대되었다.[26] 그러나 이 과정에서 김태호가 이사회의 선출권을 무시하고 인사를 단행했다는 지적이 나왔으며, 전형두 또한 구단 운영 및 선수 선발에 대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였다.[27] 결국 같은 해 운영비가 적자인 상태인 점 등 구단의 경영 상태 악화를 사유로 사퇴했으며,[28][29] 전형두 및 구단 수뇌부와의 갈등을 빚으며 허위 기사가 보도되는 등의 피해를 받은 박항서 또한 동반 사임하였다.[30][31] 그리고 2007년 기공을 시작한 창원축구센터의 건립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며,[32]2007년 FIFA U-17 월드컵의 일부 경기를 창원시에서 유치하는 데 공헌하였다.[33]
이후 2008년 경남축구협회의 회장으로 재신임받아 제21대 경남축구협회 회장이 되었으며,[34] 2010년 김두관 경상남도지사에 의해 김영만의 후임으로 구단의 제5대 대표이사로 내정되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35] 그러나 경남 서포터스연합회 측에서는 과거 전형두가 제2대 대표이사로 활동했던 시절 독단적인 구단 운영을 일삼았다는 이유로 전형두의 대표이사 선임에 반대했지만,[36][37] 결국 이사회의 결정으로 전형두의 대표이사 취임이 확정되어 경남 FC로 복귀하였다.[38][39] 그 뒤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수사 당시 정종관이 승부조작에 관여했던 것으로 인해 자살하자 조의를 표했으며,[40] 승부조작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승강제의 도입을 추진하였다.[41][42] 이후 그 해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이사진을 개편할 당시 구단 대표의 몫 중 한 자리를 배정받았으나,[43] 2012년 K리그의 승강제 시행을 앞두고 강등팀이 4팀에서 2팀으로 조정된 안이 통과되자 이에 반발하여 사임하였다.[44] 또한 같은 해 건강상의 이유로 구단 대표이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결국 물러났지만,[45][46] 2013년 경남축구협회의 회장으로 재추대되어 제22대 경남축구협회 회장 자격으로 얼마 뒤 있었던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휠체어를 탄 채로 참석하였다.[47][48]
사망
2013년 3월 25일 담도간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세상을 떠났으며,[49] 장례는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치러졌고 유해는 경상남도함양군용추사에 안장되었다. 이후 경남 FC 선수들은 3월 30일 있었던 FC 서울과의 K리그 경기에서 검은 완장을 차고 나오며 조의를 표했으며,[50] 같은 날 열린 경남권 고등리그 경기에 나선 선수들 및 관계자 또한 근조 리본을 달고 경기에 임했다.[51]
그리고 2014년 축구와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수국 전형두 기념사업회'가 출범했으며,[61] 2015년 지역 축구 발전을 위한 장학재단인 '수국 전형두 축구장학재단'이 발족하였고,[62][63] 같은 해 전형두의 유언 및 가족, 지인들과 나눈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자서전 형태의 책인 '축구바보 전형두'를 발간하였다.[64]
이외에 2016년 창원축구센터에 채금석, 이회택에 이어 대한민국의 축구인 중 세 번째로 흉상이 제막되었으며,[65] 2018년 창원축구센터에서 5주기 추모제가 열렸다.[66]
기타
2007년 마산시문화방송에서 경남 FC를 소재로 제작한 스포츠 다큐멘터리 '돌풍'의 2부에서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등장했으며,[67] 2012년 문화방송 경남에서 전형두의 축구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열정'이 방영되었다.[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