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2월 1일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국가인민위원회의 위임을 맡았는데, 이것은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의 탄생으로 생각된다.
1921년 아버지 페타르 1세가 죽자 그 해 8월 16일 왕위를 계승해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1929년 크로아티아 농민당의 당수 스테판 라디치의 암살을 계기로 정치적 위기에 대응해 헌법 폐지와 의회 해산으로 개인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10월 3일 33개의 주를 9개의 바노비나로 개편했다.
1931년에는 새 헌법을 제정해서 성인 남성에게도 참정권을 주겠다고 결정했으나 비밀 선거에 관한 규정은 기각되었다. 이로써 모든 국가 투표는 알렉산다르 국왕의 헌법 아래에 치러지고 국왕이 직접 참의원 의원의 절반을 승인했고 법안도 국왕이 승인해야 합법적으로 적용되었다.
암살
어느 화요일에 그의 가족 중 3명이 죽자 알렉산다르는 공개적으로 집무 수행을 거부했으나 1934년10월 9일프랑스 제3공화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마르세유를 방문했다.
저격범 체르노젬스키도 그 자리에서 군중들과 프랑스 경찰들에게 구타당해 죽었다. 체르노젬스키의 배후에는 이탈리아의 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 크로아티아의 파시스트 조직인 우스타샤의 수장이었던 안테 파벨리치가 있었다. 사후 아들 페타르 2세가 그 뒤를 이었고 그의 암살에 대한 필름 기록은 미국 대통령 케네디 암살 사건과 함께 현존하는 중요한 암살 사건 기록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