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석(朴元錫, 일본식 이름: 德田元敎 도쿠타 모토쿄, 1923년 3월 27일 ~ 2015년 11월 30일)은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기업가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호는 의봉(義峰)이다.
생애
충청남도 대전군(현 대전광역시) 출신으로[1] 일제 강점기 1942년 봄에 대전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육군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예과의 후신으로 1937년 8월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함)에 진학했다. 1943년 12월 예과를 제58기로 마친 뒤 일본 육군 항공사관학교를 1945년 3월 졸업했다. 1945년 7월에 일본군 항공대 소위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1948년 4월 육군사관학교를 제5기로 졸업하고 박정희에게는 일본육사 1기 후배가 된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 미군정 지역으로 월남[2] 하여 대한민국 국군에 참여했다. 육군사관학교를 제5기로 졸업하고 대한민국 육군에 설치된 항공사관학교 교수부장을 지내던 중, 1949년 경 박정희가 남조선로동당 가담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군내 남로당 조직의 말단 조직원으로 의심을 받은 적이 있다.[3] 1949년 10월 1일 대한민국 공군 창설에 참여하여 공군으로 전군한 후 1956년 공군대학을 창설하고 교장이 되었으며, 1960년에는 공군사관학교 교장에 올랐다.
1961년 박정희가 5·16 군사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박원석은 1962년 공군참모차장, 1963년 대한민국 중앙정보부 차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외교국방위원장을 맡는 등 정변 세력에 의해 중용되었다. 육군사관학교 동기인 김재춘이 중정 부장을 맡았을 때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함경도 인맥의 만주군 출신 정변 가담 세력을 숙청하는 일명 '알라스카 토벌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1964년 7월부터 약 2년 동안 8대 공군참모총장을 맡았고, 1966년에 공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곧바로 대한석유공사(현 SK에너지) 사장에 임명되어 1975년 3월까지 재직했다. 이후 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쌍용 시멘트 고문, 쌍용정유(현 S-Oil) 회장 등을 지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군 부문에 선정되었다.
같이 보기
각주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