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33년우루과이에서 페냐롤에 가입하였다. 1년 후, 그는 브라질로 돌아와 CR 바스쿠 다 가마를 위하여 활약하였다. 그는 팀이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선수권을 우승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34년 FIFA 월드컵에서 활약한 후 그는 보타포구 FR에 가임하여 1935년 또다른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선수권을 우승하였다. 이듬해 그는 CR 플라멩구에 가입하여 1941년까지 그 팀에 있었다. 다시 한번 1939년 팀은 리우데자네이루 주립 선수권을 우승하였다. 그는 또한 축구에서 편견에 대항하는 운동의 선두에 있었으며, 당시 엘리트주의의 플라멩구 팀에 가입한 첫 흑인 선수들 중의 하나였다.
레오니다스는 "자전거 킥"을 발명함으로 인정받은 몇몇의 가능한 선수들 중의 하나이다. 처음에 레오니다스가 이용한 이 기술은 1932년4월 24일 봉수세수와 카리오카 간의 매치에서였다. CR 플라멩쿠에서 그는 1939년아르헨티나의 팀 인디펜디엔테를 상대로 이 동작을 단 한번 사용하였다. 보기 드문 발리는 당시 큰 명성을 얻어 축구의 주류로 추진해 나갔다. 상파울루 FC를 위하여 그는 2개의 제전에서 자전거 킥을 이용하였는 데 처음 1942년6월 14일 팔레스트라 이탈리아(현재의 SE 파우메이라스)를 상대로 패한 매치에서였다. 사상 가장 유명하게 그는 1948년11월 13일유벤투스에 막대한 8 대 0의 승리에서 그 킥을 사용하였다. 활약과 골은 이매지에 잡혔고 선수의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서 여겨졌다. 1938년 FIFA 월드컵에서 그는 또한 관객들의 기쁨으로 자전거 킥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국가 대표팀
그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위하여 19번이나 활약하여 총 21골을 기록하고, 자신의 데뷔에 2번이나 득점하였다. 1938년 그는 7골과 함께 월드컵의 최고 득점자였으며, 폴란드를 상대로 여분의 6 대 5에서 최소한 3골을 득점하였다. 브라질 팀의 감독 아데마르 피멘타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준결승전을 위하여 그를 쉬도록 결정하였다. 이탈리아는 2 대 1로 경기를 우승하였다.
1938년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레오니다스는 "검은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다음해 브라질의 초콜릿 제조회사 락타는 초콜릿바를 "디아만테 네그로 (Diamante Negro)"로 이름을 짓는 권리에 레오니다스로부터 매입하였다. 이 초콜릿 브랜드는 아직도 브라질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중이다.
은퇴 이후
그는 라디오 기자와 당시 상파울루에서 가구점의 주인이 되는 데 축구를 떠나기 전에 1953년 상파울루 FC에 감독으로 가입하였다. 2004년 레오니다스는 1974년 이래 겪어온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상파울루의 모라다 다 파즈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