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改名) 前 이름은 김해수(金海壽)이며 김승호는 1917년7월 13일강원특별자치도철원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강원도 춘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그 후 경성부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1930년대 중반에 김두한이 동양극장청춘좌에 소개해 준 것을 계기로 배우 활동을 시작하였다. 광복 이후 1945년자유극장 창립단원 가운데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1946년 영화 《자유만세》에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1956년 영화 《시집 가는 날》에서 맹 진사 역을 맡은 그는 1957년일본도쿄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상 (희극상)을 수상하면서 스타로서의 지위를 확립해 나갔다. 이후 《로맨스 빠빠》, 《마부》, 《돈》, 《인생차압》, 《박서방》, 《삼등과장》, 《굴비》, 《돌무지》 등 2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였다. 1960년 4·19 혁명 당시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선거(3·15 부정선거)와 관련된 연설을 이유로 4.19 혁명 관련 단체에서 자택에 습격받았지만, 김두한에 의해 오해가 풀렸다.[1]1967년에는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1968년12월 1일 고혈압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