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직에 오른 후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 사과 성명을 발표하였으며, 2008년 경제위기를 무사히 넘겨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2010년에 탄소세 신설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으며, 이에 부대표였던 줄리아 길러드가 그를 몰아내고 총리직에 취임하였다. 러드는 길러드 내각에서 외무부 장관을 맡았으나 이내 사퇴하고 2013년에 길러드를 다시 몰아내 총리직에 복귀하였다.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노동당은 2013년 총선에서 대패하였고 러드는 곧바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 해 러드는 하원의원직도 사퇴하면서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2016년에 그는 반기문의 뒤를 이어 차기 유엔사무총장에 도전하였으나 총리였던 맬컴 턴불이 추천하지 않음으로써 후보에 오르지 못하였다.
성장 과정
영국과 아일랜드계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 퀸즐랜드주남부어에서 태어났으며, 지역에서 '수재', '교수'라는 극찬과 함께 고등학교 과정까지 우수한 성적(139/140)으로 마쳤다.
11살 때 보수 정당이었던 지방당(Country Party) 소속 당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별세하면서 한때 불우한 청년 시절을 보냈으나, 호주국립대학교(ANU)의 아시아학과(중어중문학 전공)를 졸업한 직후, 1982년에는 진보적 정당인 노동당에 입당하였다.
그는 1988년에 웨인 고스(Wayne Goss) 퀸즐랜드 주 예비내각의 대변인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하였고, 1989년 자당의 선거 승리와 동시에 행정부에 발탁되었다. 그 시절 그는 딱딱하지만 능력있는 기술관료로서 '죽음의 박사'(Dr. Death)라는 별칭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주의 개혁작업을 도왔으며, 1996년 실각 이후에는 연방정치에 투신, 1998년 총선거에서 고향 퀸즐랜드주 그뤼프(Griffith) 지역구를 대표하는 연방(하원)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2001년부터 5년동안 예비내각의 외교문제 대변인을 지냈다. 2006년12월 의원총회에서 전임 킴 비즐리와의 표대결에서 49 대 39로 승리,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의 당수이자 범야권의 지도자(Leader of the Opposition)역할을 수행했다.[2].
이라크 전쟁에 비판적인 그는 2007년 초, 존 하워드 당시 총리의 버락 오바마(2009년 기준으로 미국 대통령, 당시 민주당경선후보) 비난에 대한 신랄한 반박연설[3]로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 이후 존 하워드 당시 총리에게 단 한번도 '선호하는 연방총리'(여론조사)에서 뒤처지지 않은 채 꾸준히 1위를 유지하였다.
러드는 2008년4월 19일부터 4월 20일까지 캔버라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 2020 서밋(Australia 2020 Summit)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계 계층 인사 1,000명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의 생산성, 경제, 기후 변화, 농촌, 보건, 사회 공동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창조성, 정치, 안보와 번영에 관한 비전을 논의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오스트레일리아가 국민투표를 통해 공화주의 국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책적으로는 우선 교육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투자와 개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지나친 고용시장 유연화(고용과 해고의 수월함 곧 불안전노동인 비정규직 고용, 단체교섭권과 더불어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자 스스로 주장하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인 단결권, 단체행동권의 제한 또는 약화 등)와 초과근로수당(정해진 노동시간 이외의 노동을 제공할 경우 받는 임금, 한국에서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좋아지면서 시작되었음.)등 노동자의 혜택을 축소시켜 전국민적 반발을 산 전임 오스트레일리아 보수연립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근로기준법 개정법률'(workchoices)의 효력을 정지시키며, 집권시 이라크에 파병된 자국 군인들(약 1500여 명)의 즉각적인 3단계 철수 및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교토 의정서의 조속한 비준을 추진하며, 초고속통신망의 조기 구축과 더불어 국가행정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공무원 감축과 불필요한 규제를 혁신하고, 그리고 정치분야의 개혁과 신뢰 회복을 주장하는 등, 기존의 노동당이 추구했던 정책들과는 색다른 시각에서 제3의 길을 추구하는 유연한 사회민주주의 정책들을 추구하였다.
다만, 2007년 4월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발표한 우라늄 해외 수출계획은 녹색당과 각종 환경단체들의 비판을 받고 있으며, 경제부문에서 경기호황을 지속하기 위한 인플레이션 억제와 오스트레일리아연방준비은행의 정치적 중립 유지, 그리고 정부의 긴축재정 운영 등의 정책은 전임 존 하워드 보수정권이 추진했던 정책들과 유사하다(이른바 'Me-too' 정책)는 비판을 받고 있다.[4]
자국내에서 비슷한 용모로 '해리 포터'란 별칭을 얻은 그와, 자국에서 3번째로 큰 고용(직업)알선 전문기업을 운영하는 그의 아내 테리즈 라인(Thérèse Rein) 사이에 3명의 자녀(Jessica, Nicholas, Marcus)가 있는데, 중국통인 그의 지도 아래 세 자녀 모두 중국어를 익혔다. 2007년8월에는, 2003년의 미국 방문당시 뉴욕에서 만취상태로 스트립쇼를 그의 수행원들과 함께 단체관람했던 일이 오스트레일리아 보수언론들에 의해 폭로되어 곤경을 겪었으나, 즉각적인 사실인정과 대국민사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6] 그와, 그의 행정부의 재무장관이자 줄리아 길라드 행정부의 부총리였던 웨인 스완(Wayne Swan)연방하원의원은 같은 마을에서 함께 배우고 자란 '죽마고우'(친구)로 유명하였으나, 2011년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리더십 투표에서 웨인 스완이 줄리아 길라드와 협력하여, 그 관계가 소원해진 바 있다.
이 문서에서 출처표시가 없는 부분은 아래의 책 내용을 참조하였음. Kevin Rudd: An Unauthorised Political Biography, Nicholas Stuart (Scribe Publications Pty Ltd, 2008년 9월 출간). ISBN978-1-921215-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