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이후에 분할되어, 두 개의 사단으로 분리/확대되었다. 이것 역시 프랑스 침공 후 기갑사단을 증설하려는 히틀러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제16기갑사단 (1940년 이후)
1941년 발칸 침공 작전 당시 루마니아에서 예비대로 배치되었다. 같은 해 발칸반도 점령 직후 감행된 바르바로사 작전에서는 남부집단군 소속으로 참전하였으며. 1942년 ~ 1943년 사이 스탈린그라드(현재의 볼고그라드)에서 포위 및 괴멸되었다. 1943년 서부에서 재편성 된 제16기갑사단은 이후 시칠리 및 남부 이탈리아에서 미국-영국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그 해에 다시 러시아 전선으로 복귀했고, 1944년 키예프 근방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받고, 재편성을 위해 폴란드로 철수했다. 1945년에 동부로 복귀 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소련군 및 미군에 항복했다.
제16차량화 보병사단 '빈트훈트'
발칸 침공작전에 참가하였으며,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에 남부집단군 소속으로 참가했다.[1]코카서스로 진격하여, 아스트라칸 20마일 근방까지 분견대가 진격했다. 대전 당시 여타 부대보다 소련 영토를 가장 깊숙이 침공했지만, 소련이 남부전구의 전선을 돌파한 후에는 방어 임무로 돌려졌다. 1943년에 제16기갑척탄병사단으로 승격되지만, 계속되는 패퇴로 막대한 손실을 입고, 휴식과 재편성을 위해 프랑스로 이동했다. 프랑스에서 사단은 제116기갑사단으로 재편성되었다(제16기갑사단이라는 단대호는 형제사단이 이미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대호를 변경했음).
제116기갑사단
1944년 3월, 116 기갑사단으로 재편성되었으며(제16기갑사단이라는 단대호는 형제사단이 이미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대호를 변경했음), 편성중에 179 예비기갑사단을 흡수한다. 노르망디 전투에 참가 후 팔레즈 포켓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급감한 전력으로 아헨(Aachen)에 있는 서부 방벽 수비대로 배치되었으나, 재편성을 위해 후퇴한다. 재편성 후에 방벽 수비에 재투입되나 실패하고, 1944년 휘르트겐(Hürtgen) 숲 전투 및 발지 전투에 참가, 또 다시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1945년 베젤 포위망에서 포위되나 가까스로 라인강을 건너 탈출하였다. 1945년 4월 루르 포켓에서 항복했다.
제16국민척탄병사단
제16국민척탄병사단은 1944년 10월에 창설되어 라인 상류를 패퇴해 독일 심부까지 후퇴하게 된 1945년 3월까지 방어했다.
전쟁범죄
제16차량화 보병사단은 1943년 10월 4일 25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한 캄파니아의 산 클레멘테 디 카세르타 학살의 주범이다.[2][3]
Müller-Hillebrand, Burkhard (1969). 《Das Heer 1933–1945. Entwicklung des organisatorischen Aufbaues》 (독일어). III: Der Zweifrontenkrieg. Das Heer vom Beginn des Feldzuges gegen die Sowjetunion bis zum Kriegsende. Frankfurt am Main: Mittler. 286쪽.
Tessin, Georg (1970). 《Verbände und Truppen der deutschen Wehrmacht und Waffen-SS im Zweiten Weltkrieg, 1939–1945》 (독일어). IV: Die Landstreitkräfte 15–30. Frankfurt am Main: Mittler.
영어판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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