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61 보병사단은 벨기에와 됭케르크에서 싸웠다. 프랑스가 항복한 후에는 브리타니에 점령군으로 주둔하며 군정을 실시했다. 1941년초, 사단은 소련 침공을 위해 동프로이센으로 이동했다. 61 사단은 폴란드전 당시처럼 퀴흘러의 북부집단군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 북부집단군 18 군에 배속된 것이다. 사단은 탈린과 발틱 섬 작전에 참가했다. 레닌그라드로 진격하여 1944년 1월까지 레닌그라드 포위전에 투입되었다. 1944년 1월 이후, 소련의 공세에 밀려 에스토니아로 후퇴했다. 에스토니아로 후퇴한 후 예비대로 돌려졌던 사단은 그해 7월에는 북부집단군으로부터 "완전히 전투 가능한" 유일한 2개 사단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1944년 10월, 61 보병사단은 61 국민척탄병사단(Volksgrenadier)로 개편되어 계속 동부전선에서 북부집단군 및 중부집단군 예하에서 싸웠다. 동프로이센으로 철수한 뒤 사단은 진격하는 소련군과 비스툴라 석호 사이에 갇혀 하일리게네바일 가마솥이라 불린 곳에서 전투했다. 가마솥이 붕괴한 1945년 3월, 많은 피해를 입은 사단은 21 보병사단에 아직 남은 병력과 장비를 넘겨주고, 사단 지휘부는 쾨니히스베르크로 철수했으나, 전쟁 말 소련군에 포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