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등학교 시절 수비 위치는 주로 3루수였으나 부쩍 커 버린 키 때문에 1루수로 이동했다. 중앙고등학교 시절 2002년에 한화 이글스의 2차 8라운드(전체 60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다.[2]성균관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4년에 국가대표로 첫 선발돼 제 2회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고, 한국이 3위를 기록하는 데 공헌했다.
시범 경기에서 홈런 1위, 타점 1위를 기록해 기대를 모으며 개막전 명단에 포함됐다. 하지만 개막 후 4월 17일까지 8타수 무안타를 기록해 2군으로 내려갔다. 4월 28일에 1군에 복귀했으나 다시 무안타를 기록했고, 5월 3일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시즌 첫 안타를 2점 홈런으로 기록했다. 1군과 2군을 오가며 61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4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개막 직전 김태균의 부상으로 개막전부터 1루수 겸 4번 타자로 출장했다. 김태균이 복귀한 후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7월 10일KIA전에서 이범석의 직구에 아랫 입술과 턱 밑을 강타당했고, 이후 보호대가 달린 검투사 헬멧을 착용하기 시작했다.[3] 시즌 124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102안타, 23홈런, 73타점으로 장타자의 면모를 발휘했다.[4]
김태균, 이범호의 일본 진출로 인해 외야수 최진행과 함께 중심 타선에서 1루수를 맡기 시작했다. 4월 10일롯데전에서 8번 출루해 개인 최다이자 KBO 최다 출루를 기록했다. 4월 18일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기습 번트 타구 수비 중 왼쪽 어깨 부상을 당해 4월 21일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5월 11일에 1군 엔트리에 다시 등록됐다. 6월 이후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고, KIA 타이거즈에서 3:3 트레이드된 장성호가 입단해 수비 위치가 다시 지명타자로 변경됐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팀 60인 예상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해 팀에서 류현진만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차출됐다. 시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소해 대전고등학교에서 대체 복무를 마치고 소집 해제됐다.
팀의 마무리 훈련을 통해 복귀했으며, 그의 복귀를 대비해 팀에서는 롯데 자이언츠로부터 투수 송창현을 받고 장성호를 내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6]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며, 시즌 중반에 공익 근무 소집이 해제돼 복귀한 입단 동기 송광민에 비해 타격이 부진해 시즌 중 2군으로 3번 강등당하는 등 복귀 후에도 좋지 못했다. 이 원인엔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의 무리한 우익수 기용이 상당한 몫을 차지했다. 선수 파악이 덜 됐던 김응용은 그를 3루수로도 기용하는 자충수를 뒀다. 실제로 그의 입소 전 우익수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시즌 93경기에 출전해 3홈런, 2할대 타율에 그치고 9월 21일에 3번째로 2군에 강등된 후 김응용이 교육 리그 참가를 지시해 시즌을 마감했다.[7]
크로스 스탠스이며, 팔을 높게 들면서 방망이 머리 부분은 투수를 향한 후 타격하는 독특한 폼을 가지고 있다. 그와 비슷한 타격 폼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박진만, 케빈 유킬리스가 있다. 그리고 타석에 설 때 홈 플레이트에서 가장 먼 곳에 서서 타격한다. 하지만, 이 타격 폼의 문제는 손목의 힘이 좋지 않으면 부상을 유발할 수 있고, 배트 스피드가 떨어지며, 스윙 궤적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