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라코글로우 공화주의자는 군주제를 폐지하기 위한 기회로 추축국의 점령을 고려하고 취임하자마자 왕가의 끝을 발표였지만, 적과 협력 관계인 정권은 뚜렷한 정치적 의미가 없었다.[2]
추축국들은 그들의 점령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보조적인 역할로서 원래의 그리스 정부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가의 사회 기반 시설은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었다. 원자재와 식품류는 징용되었고, 인플레이션의 초래와 더 나아가서는 전시 공채를 악화시킬 수 있는 비용의 지불을 점령의 대가로 강요받은 그리스는 나치 독일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스에 대한 연합 봉쇄와 함께 이루어진 징용은 1941년-1942년 겨울에 어림잡아도 300,000명의 죽음을 부른 대기근(그리스어: Μεγάλος Λιμός)의 원인이 되었다.
출처
↑Yves Durand, Le Nouvel ordre européen nazi, Complexe, Paris, 1990, p.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