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노씨(光州盧氏)는 광주광역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혹칭 광산 노씨(光山 盧氏)라 한다. 광산(光山)은 광주(光)의 고호이다.
역사
중국 유주 범양(范陽) 출신으로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가 당나라 희종(僖宗)(재위 873~888) 5년인 877년 황소의 난을 피하여 아들 9형제를 데리고 신라(헌강왕 3년)로 이주하여 평안도 정주(定州) 능리촌(菱里村)에 정착하였다가 이후 신라 효공왕(재위 897~912)때 평안도 룡강(龍岡)으로 옮겨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그의 아들이 광산백(光山伯)에 봉해져 후손들이 그를 득관조로 하고 광산(현재의 광주광역시)을 관향으로 하였다.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고 고려 때 정승(政丞)을 지내고 광주군(光州君)에 봉해진 노만(盧蔓)을 1세조로 하는 계통과 고려 때 감문위 대호군(監門衛 大護軍) 노서(盧恕)를 1세조로 하는 계통으로 갈리어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분파
노만 계열
규정공파(糾正公派): 파조 노승조(盧承肇)
헌납공파(獻納公派): 파조 노승관(盧承綰)
노서 계열
노서(盧恕)의 아들은 좌우위 대호군 노단(盧亶)이고, 손자는 감찰사 지평 노준경(盧俊卿)이며, 증손자는 고려조에 전라도관찰사를 지내고 조선 태종 때 우의정을 지낸 노숭(盧崇)이다.[1] 증손 우의정 경평공(敬平公) 노숭의 다섯 아들 대에 분파하였다.
광주(光州)는 대한민국 서남부에 있는 광역시의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무진주(武珍州)이다. 통일신라에서 도독(都督)을 두었으며 757년(경덕왕 16) 무주(武州)로 고쳤다. 892년(진성여왕 6)에는 견훤(甄萱)이 후백제를 세워 도읍을 정하기도 하였으나, 940년(고려 태조 23)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고 군현을 정비하면서 무진주를 광주(光州)로 개편하고 도독부를 두었다. 995년(성종 14) 관제개혁 때 해양현(海陽縣)이라 불렀고 1259년(고종 46) 기주(冀州)라 고쳤다가 1275년(충렬왕 1) 다시 무주로 개칭하였다. 1310년(충선왕 2)에 화평부(化平府)로, 1362년(공민왕 11)에는 무진부(武珍府)로, 1373년(공민왕 22)에 이르러 광주목(光州牧)으로 개편되었다. 1430년(세종 12) 무진군으로 강등되었다가 1451년(문종 1)에 다시 광주목이 되고, 1489년(성종 20)에는 광주현으로 격하되었다가 1501년(연산군 7) 광주목으로 환원되었다. 1624년(인조 2)에는 광산현(光山縣)으로 편입되었다가 1634년에 다시 광주목으로 독립하였다.
1454년(단종 2)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전라도 장흥도호부 무진군의 토성(土姓)으로 탁(卓)·이(李)·김(金)·채(蔡)·노(盧)·장(張)·정(鄭)·박(朴)·진(陳)·허(許)·반(潘)·성(成)·승(承) 13성이 기록되어 있다.[2]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羅州府)의 광주군(光州郡)이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전라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1935년 광주읍(光州邑)이 부(府)로 승격되었고, 광주군은 광산군(光山郡)이 되었다. 1949년 광주시가 되고 1986년 광주직할시로 승격되었다. 1988년에는 송정시와 광산군을 흡수하여 광산구를 신설하였고, 1995년 광주광역시로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