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충청남도공주시송산리(현재 행정구역명은 웅진동)에 위치한 백제의 왕릉들로 추정되는 고분들로 현재 1, 2, 3, 4, 5, 6, 7호 분이 복원이 되어 있다. 이중 7호분은 무령왕릉으로 더 널리 알려져있다.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총 8개의 유적지들 중 공주지역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가 세계 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번 세계 유산 등재는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 2021년 9월 17일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공주 송산리 1호분(公州 宋山里 一號墳)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에 있는, 백제 중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석실분이다. 송산리 고분군의 하나이다.
남쪽으로 면한 구릉의 사면(斜面)을 파고, 직사각형 묘실을 활석으로 쌓고 벽면에 회칠을 했는데 천장은 안으로 좁혀든(內傾) 네 벽 위에 얹은 한 개의 돌로 이루어졌고, 배수구(排水構)가 연문에서 시작하여 연도의 중앙을 지나 밖으로 뽑아지고 있다. 벽면에 휘장을 쳤을 것으로 여겨지는 못이 박혀 있는데 이러한 예는 함안(咸安)의 가야시대(伽倻時代) 고분에서도 볼 수 있어 서로 교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또 전체적인 가구나 형식이 고구려의 분묘와 흡사하여 이러한 유의 고분형식이 고구려에서 시작하여 남전(南傳)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1 ~ 4호분은 백제의 굴식 돌방무덤으로 1927년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이전에 이미 도굴됐다. 조사 당시 동서방향으로 5기의 고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는 4기만 복원되어 있다. 벽돌로 쌓은 묘실은 가로 세로의 크기가 거의 같은 정사각형의 형태이며, 남벽의 우측에 묘실로 들어가는 통로인 널길이 달려있다. 벽면과 천장에는 백회를 발랐으며, 바닥에는 자갈을 깔았다. 조사 당시에 금제와 은제, 그리고 금동제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5호분
5호분은 1932년 우연히 발견되어 조사되었는데, 1~4호분과 마찬가지로 굴식 돌방무덤이다. 130cm 높이까지 벽면을 수직으로 쌓고, 그 위는 안으로 기울어지게 쌓아 천정이 돔 형태가 되도록 하였다. 바닥에는 목관을 올려 놓는 관대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조사 전에 도굴되어 토기 1점과 약간의 장신구, 그리고 관못 등이 남아 있었다. 백제의 왕이나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무령왕릉(武寧王陵)은 공주 송산리 고분군 가운데 7번째로 발견된 고분으로, 백제무령왕과 그 왕비의 능이다. 1971년7월 7일 처음 발굴되었다. 지석이 발견되어 축조연대를 분명히 제시해주었기 때문에 삼국 시대고고학 편년연구의 기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국보로 지정된 금제관식, 금제뒤꽂이, 금제 심엽형이식(귀걸이), 지석, 석수, 청동신수경 등을 포함하여 총 2900여 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국립공주박물관이 대부분 보관하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위치는 충청남도공주시금성동(옛지명 : 송산리)이다. 1990년대 초기까지만 일반 방문객들은 모여서 요청하면 관리자가 동행하여 고분 안의 유리벽으로 막힌 석실 바로 앞에 고분의 벽돌 바닥면을 밟으며 가는 곳마다 사람이 죽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