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체육회는 당초 제7회 전조선축구대회를 당초 1926년 5월에 개최할 예정이었다.[2] 하지만 대한제국 순종이 사망하여 국장을 치르게 되어 일정이 가을로 연기되었다.[2] 결국 제7회 전조선축구대회는 1926년 11월 18일부터 사흘간 일제강점기 조선경성부에 있는 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1]
소학부에는 숭덕학교, 장훈학교, 안악공립보통학교, 정동공립보통학교, 죽첨공립보통학교, 광성학교, 진명보통학교, 가명학교 등 8개 선수단이 참가하였고, 중학부에는 배재고등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 경신학교, 남대문상업, 중앙청년학관, 보성고등보통학교, 고창고등보통학교 등 7개 선수단이 출전했다.[1] 전문부에는 연희전문학교, 보성전문학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법정학교, 숭실전문학교 등 5개 선수단이 참가했고, 청년부에는 조선축구단, 건강구락부, 무오단, 고려구락부, 한양축구단, 수원축구단 등 6개 선수단이 출전했다.[1]
소학부 종목 결승에서는 숭덕학교가 안양공립보통학교학교를 1:0로 이기며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하였고, 중학부에서는 배재고등보통학교가 결승에서 경신학교를 5:2으로 이기며 4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3] 전문부에서는 연희전문이 숭실대학을 상대로 2:0로 이기며 우승을 하였고, 청년부 종목에서는 무오단이 조선축구단을 2:1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