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은 조선시대의 국상제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국상은 태상왕과 대왕대비, 상왕과 왕대비, 왕과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세손과 왕세손빈까지를 대상자로 삼았으며 국상의 기간은 대개 6개월이었다. 국상 기간에는 모든 백성이 상복을 입었으며 장례를 담당하는 국상도감이 설치되기도 했다.
과거 국장 대상자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고, 장의 비용은 전액 국비로 치렀다. 장의기간은 9일 내로 하고 장의기간 중에는 조기를 게양하였다. 또한 장의기간 중 모든 국민은 음주와 가무를 삼가고, 방송이나 신문도 고인의 업적을 보도해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영결식 당일에는 모든 관공서가 휴무에 들어갔다.
영결식
영결식은 국장 기간의 마지막 날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영결식을 마지막으로 빈소를 정리하지만, 국장의 경우 각지의 빈소는 영결식이 끝나도 빈소를 정리하지 않고 조문을 받기도 한다. 국장의 영결식 순서는 대개 국민장의 순서와 동일하며,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과 그 관계 법령에 따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 국장은 1979년11월 3일 오전 10시 중앙청 앞 마당에서 거행됐다. 사회는 김창식 소청심사위원장이 맡았다. 국장에는 유족과 41개국 조문사절 및 각계인사 등 3천여명이 참석했다. 운구 행렬은 중앙청에서 서울 시내를 시가행진한 뒤 바로 국립묘지로 이동하여 오후 2시부터 안장식을 가졌다.[6] 각계 지도자들의 추모헌화와 개신교, 불교, 천주교 대표자의 종교의식이 끝난 뒤 지석이 매장되고 취토가 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은 2009년8월 23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 앞 마당에서 거행됐다. 1979년 이후 30년 만에 치러지는 2번째 국장으로 사회는 조순용 청와대 전 민정 수석과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이 맡았다. 국장에는 정관계 주요 인사와 주한 외교 사절 유족 등 2만 4000여명이 참석했다. 운구 행렬은 여의도민주당사를 거쳐 동교동 사저에 머무른 뒤 인근 김대중도서관을 둘러본 후 다시 이동, 서울광장에서 추모제를 연 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하여 오후 5시가 넘어 안장식을 가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장은 국가적으로 지내는 장례로서, 사회에, 당의 발전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인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사망하였을 때, 국가가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국가의 명의로 거행하도록 하고 있다 단 최고존엄인 김씨왕조는 다른 장례식과 다르게 성대하게 한다.
↑대통령을 역임하였다고 모두 국장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규하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장으로 하였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정부, 재야 단체, 4.19 관련 단체들의 반목 결과 가족장으로 치러졌고, 윤보선 전 대통령도 가족장으로 치렀다.
↑고인이 생전에 주로 믿었던 종교의 장례 의식을 가장 먼저 하지만, 고인이 어느 종교의 신자도 아닐 경우 종단끼리 협의를 하여 순서를 정한다. 본인 스스로 '무교'라고 지칭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은 불교 · 개신교 · 천주교 · 원불교 순으로 진행되었고, 천주교 신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은 천주교 · 불교 · 개신교 · 원불교의 순서로 종교 의식이 진행되었다.
↑특별히 제작된 곡을 조가라 부르며 고인이 생전 좋아하는 노래 연주로 대체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는 '청산에 살리라'가 연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