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4월 제3차 조선로동당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 서열 28위로 선출되고, 56년 6월김일성 수상의 소련, 동독, 중앙유럽 순방길에 북조선 대표단원의 한 사람으로 수행하였다. 1959년7월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1960년 내각 부총리 겸 중공업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1962년 내각 부총리에 재선되면서 부총리 겸 금속화학공업상이 되었다.[1] 그 후 1965년 국립 과학원 원장을 거쳐 1971년광업상이 되었다. 1972년 6월 다시 광업상, 그해 말 제5차 내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중공업위원장 겸 중앙인민위원, 1973년 조선로동당 정치위원회 후보위원이 되었다.[1]1976년11월 정무원 부총리가 되었다.
1977년 제6차 내각이 출범하였고 다시 부총리가 되었다. 1980년 제6차 조선로동당대회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어 김일성과 김일, 오진우, 김정일에 이어 북한권력서열 5위가 되었다. 1982년 제7대 내각에서도 정무원 총리가 되었으며[1], 그 해에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 1984년1월 국가 부주석으로 선임되었고, 1988년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1]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사실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계에서 은퇴했다.[1] 1999년 지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1992년 다시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1]1999년9월 23일 병으로 사망, 국장으로 평양시 신미리의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