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한 덴나미와 마찬가지로 구역 거의 전체가 나리타 국제공항(구 신도쿄 국제공항) 부지 내에 속해 있으며 후루고메에는 제2여객터미널과 유도로, 공항 관리 빌딩 등의 공항 시설이 놓여져 있다. 그 외에 나리타 공항 휴게소, 나리타 국제공항 경찰서, 나리타 국제공항주식회사 본사 사옥, TFK 나리타 본사 사옥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직후인 1946년 이전까지는 궁내청 시모후사 어료목장 부지의 일부였으며, 1946년경부터 시작된 전후개척에서 어료목장 부지 중 일부가 농지로 개방되었고, 이런 현유림의 일부였던 토지가 매각되며 개척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만들어졌다.[11] 이 때 당시 이주한 당시 정착민들은 신궁민(新窮民)이라고도 불렸는데, 패전으로 인해 식민지에서 쫓겨난 히키아게샤, 오키나와 전투로 황폐해진 이후에 미국의 통치에 놓여 귀향할 수 없게 된 오키나와현 출신자, 장남이 아니라 가독을 잇지 못한 농가의 차남 이하 아들들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7][10] 불하 가격은 단당 80엔(쇼트피스 2통 상당) 정도였다.[12]
나리타 공항 건설 결정에 따라 거의 모든 부지가 공항 부지로 편입되었다. 이와 같이 일방적인 공항 건설 결정은 주변 지역 정착민의 반발을 초래해 산리즈카 시바야마 연합공항반대동맹의 결성으로 이어졌지만 덴나미의 주민(당시 32가구[11])는 이 움직임의 일선에서 벗어나 집단 내에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같은 해 10월 27일에는 후루고메, 기노네 마을과 함께 "나리타시 조건투쟁연맹"을 결성했다.[13] 결국 정부와 조건부 협상을 거쳐 모든 가구가 이주에 응했다.[14]
공항 건설에 앞서서 진행된 발굴 조사에서 약 3만년 전 사용된 구석기 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15]
공항 개항 직전에 일어난 1978년 3월 26일 나리타 공항 관제탑 점거사건이 발생한 공항 관리 빌딩이 이곳 후루고메에 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