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독일어: Fantasie für Klavier, Chor und Orchester) 다단조, 작품 번호 80》 또는 《합창 환상곡(독일어: Chor Fantasie, 영어: Choral Fantasy)》은 피아노 환상곡, 피아노 협주곡 및 칸타타의 결합을 특징으로 하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환상곡으로, 환상곡(피아노 협주곡)으로는 최초로 성악을 가미시킨 작품이다. 칸타타는 성악 가수 여섯 명의 육중창으로 시작되며, 이후 합창이 가미된다.
성립 과정
베토벤은 1808년 가을에 이 작품을 작곡했다. 초연은 같은 해 12월 22일에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 극장의 저녁 "아카데미"(독일어: Akademie, 당시에는 연주회를 아카데미라고 불렀다)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지휘로 세계 음악 역사상 불후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몇 가지 새로운 작품들을 이 무대에서 모두 선보인 베토벤은 이 합창 환상곡도 함께 선보였다. 음악 연주회 역사상으로도 손꼽을 유명한 이 "아카데미"는, 현대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긴 기록적인 연주시간(네 시간 이상)을 잡아 먹었다:
베토벤은 이 "아카데미"의 마지막 레퍼토리를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하고자 18-20분 짜리 합창 환상곡을 작곡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작곡에 많은 시일을 할애하지 못했기 때문에 작품의 도입부(약 4분에 걸치는 피아노 독주 부분)는 미처 악보에 옮겨 놓지 못한 채 연주회를 맞았다. 그래서 그는 부득이하게 초연의 날인 1808년 12월 22일에 이 도입부 만큼은 즉흥 환상곡의 형태로 연주해야 했다. 이 도입부에는 1794-5년에 쓴 미공개 작품 《두 개의 노래, WoO 118》의 두 번째 노래 "사랑은 응답했다"의 변주곡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의 멜로디는 또한 《교향곡 9번》의 피날레의 기초가 된 것이기도 하다. 그는 종이에 전주를 완성하지 않고 공연 중에 즉흥적으로 만들었다. 짧은 시간 동안에 합창 환상곡은 충분히 리허설 되지 않았고, 베토벤은 공연 중에 오케스트라를 중단하고 다시 시작했다.[1]
1810년에 무치오 클레멘티 사는 영국에서 합창 환상곡을 작품 번호 65로 출판했다. 라이프치히의 브라이코프 운트 헤르텔 사는 1811년 7월에 이것을 작품 번호 80으로 출판했으며, 베토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바이에른 왕국의 선제후 겸 초대 국왕인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에게 헌정했다.[2]
↑Klaus Martin Kopitz: Wer schrieb den Text zu Beethovens Chorphantasie? Ein unbekannter Bericht über die Uraufführung. In: Bonner Beethoven-Studien. Band 3 (2003), S. 43–46 (online; PDF; 42,9 k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