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노쇼・히구치 소에몬의 장남. 아명은 요로쿠. 관직은 종오위하야마시로노카미로, 통칭 "(나오에) 야마시로". 5살에 카게카츠의 시동이 되었다. 올곧은 성격으로 카게카츠에 충성을 다하다. 젊었을 때는 눈물 많은 일면이 있었다. 켄신의 유일한 제자로 인정 받으며 센토우인에게 북두칠성 같은 가신이 되도록 훈육받았다.
켄신 사후, 오타테의 난(御館の乱)에서는 쿠와도리노슈(衆, 무리)와 타케다 가문을 자기 편으로 하는 등의 전공을 올려 두각을 나타내면서 오타테의 난 종결 후, 가로로 승격. 나오에 노부츠나의 죽음과 카게카츠의 명으로 결국 나오에 가문을 잇게 하여 우에스기 가문의 집정으로 지휘봉을 흔들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인애 사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애의 "愛(아이)" 글자 하나를 투구 위에 꽂는 장식물로 이용하였다.
오다 노부나가 사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따른 카게카츠와 함께 상경. 그 때, 히데요시에 자신의 가신이 되게 이끌리지만 자신의 주인은 카게카츠 이외에 없다고 그 유혹을 일축했다. 에치고에서 천하만민을 위해 시야를 넓혀 우에스기 영토와 내정 그리고 친구·이시다 미츠나리를 살핀다.
히데요시 사후에 대두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대립하고 미츠나리와 결탁해서 대결을 결의. "나오에장"을 일본 각지에 뿌려 이에야스를 도발했다. 그러나 미츠나리의 패배와 함께 이에야스에게 고분고분히 명령에 따른다. 이후에는 대폭적으로 감봉된 우에스기 가문의 내정에 진력하다. 그 후도 이에야스의 불의를 규탄하면서 그 자세로 거꾸로 히데타다의 신뢰를 얻었다. 만년에는 우에스기 가문과 미츠나리의 정의를 후세에 전하러 젠린 문고(禅林文庫)를 창설하고 이를 계기로 번의 정치에서 은퇴.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며 평화롭게 인생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