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號)는 비촌(飛村)으로, 제7·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한광복군 등을 거쳐 대한민국 육군장교 등으로 복무한,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의 기업가·정치인·사회기관단체인이다. 1941년부터 1957년까지 군생활하였으며, 1942년 한국독립당 당무위원 겸 초급군사행정위원 등을 잠시 지냈었고, 특히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육군 특무부대 대공과 과장·특무처 처장, 육군본부 휼병감·정병감 등을 지내다가, 1957년 육군대령으로 예편한 그는, 군시절 제2차 세계 대전(1943년~1945년)·제주 4·3 사건(1947년)·여순 사건(1948년)·한국 전쟁(1950년~1953년) 등에 참전하였으며, 1950년 5월부터 1950년 8월까지 국방부 방첩대 방첩특무담당관 등을 잠시 지냈었다.
생애
일생
본관(관향)은 전주(全州)이고 호(號)는 비촌(飛村)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 시대 경기도양주에서 능원군 이보(綾原君 李俌)[2] 선생의 직계 후손으로 출생하였다.
1945년 10월, 삼팔선 이남 미군정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1946년 미군정 시대 군사영어학교를 1기로 졸업하였고, 미군정 시대 통위부 국방경비대 대위로 임관하였다. 미 군정 남조선 과도정부 시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 시절의 시기를 지나, 1947년 2월 남조선 과도정부 국방경비대 육군 소령 진급을 하였으며, 1947년 제주 4·3 사건에 참전하였고, 1948년 여수·순천 사건(여순 사건)과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 전쟁에도 참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