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국가대표팀에서 여러 차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세계구급 중앙 공격수로 비상한 시몬손은 1960년에 라 리가의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다.[2] 그러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비롯한 쟁쟁한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시몬손은 구단에서 그리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 마드리드의 소속 구단이 리그 정상을 차지한 1960-61 시즌에 리그에서 단 3경기만을 출전했고, 득점은 1회에 그쳤다.[2] 그가 유일한 득점을 올린 경기는 사라고사와의 안방 9차전 경기로, 이 경기에서 5-1 완승을 거두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1960년 인터콘티넨털컵과 1962-63 시즌 리그 우승 당시에도 마드리드 선수단과 동행했지만,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4] 2022년을 기준으로, 시몬손은 레알 마드리드에 몸담았던 유일한 스웨덴인이기도 하다.[5]
레알 소시에다드 임대
1961-62 시즌, 시몬손은 레알 소시에다드로 임대되어 22번의 경기에 출전해 8골을 득점했다.[2] 그러나, 소속 구단은 리그의 총 16개 구단 중 15위를 차지하며, 하부 리그로 강등당했다.[2]
외리뤼테 복귀
1963년, 시몬손은 스웨덴의 외리뤼테로 복귀하여 루네 뵈례손과 위협적인 공격진으로 발을 맞추었다. 시몬손은 리그 통산 206골로 외리뤼테의 역대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6]
시몬손은 1958년 월드컵 본선에서 4골을 기록해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모국을 결승에 올렸고,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도 득점을 올렸지만 2-5로 무릎을 꿇었다.[9]
이후 행보
그는 1959년 10월 28일에 웸블리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하여 스웨덴의 3-2로 견인한 공로로 1959년의 스벤스카 다블라데트 금메달과 굴드볼렌을 동시에 석권했다.[10] 이 경기는 스웨덴이 웸블리 원정에서 잉글랜드를 이긴 두 번째 사례에 불과했다.[11]
그가 51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한 국가대표팀 경기는 핀란드와의 1967년 8월 10일 1964-67년 북유럽 선수권 대회 경기로, 이 경기에서 스웨덴이 2-0으로 이겼다.[12]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총 27골을 기록했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