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위(室韋, 병음:Shìwéi)는 6세기에서 10세기까지 중국 동북부의 눈강(넌장강), 아르군강, 아무르강(흑룡강) 유역에 존재했던 동호족의 일파 부족이다. 위구르 제국이 키르키스인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서역으로 도주한 후 실위 중의 한 부족인 몽올실위가 현재의 몽골지역으로 이주하여 몽골제국의 직접 전신인 카마그 몽골을 형성하였다
387년 고구려에 조공한 기록이 있다. 동위의 무정(2년 554년) 4월, 실위의 사신들이 동위에 조공했다는 기록이 있고, 천보 원년(550년), 동위의 선양을 받은 북제가 성립하여 선비족의 북제에게 조공한 기록이 있다.
이후, 실위는 남실위, 북실위, 발실위, 심말달실위, 대실위의 5개 부족으로 나뉜다. 튀르크의 몽골 정복에 의해 부족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에서부터 몽골고원을 정복해 세력을 확대하고 있던 돌궐에서 파견된 3명의 튀르크 지배자 토둔(吐屯 : 감찰관)에 의해 실위인들은 관할당하게 되었다.
맹고국(萌古國)
요나라대강 10년(1084년) 2월과 3월에 맹고국(萌古国)이 요나라에 사신을 파견한 것이 『요사』에 기록되어 있다.
풍속
의식주
산업
남실위는 조, 보리, 피가 풍부하고, 겨울은 목축을 한다. 담비의 가죽을 잘 얻었다. 철광이 없어 고구려에서 철광을 얻고 있었다. 북실위는 사슴을 노획하여 얻은 고기를 주식으로 하였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고, 잡은 담비를 식생으로 하고 있었다.
언어
중국 사서에서는 실위의 언어는 고막해, 거란, 두막루와 유사하였다. 광개토대왕의 거란 정벌시 몽올실위 또한 복속되었다.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에 정복되어 튀르크화도 진행되었다. 후에 맹고국(萌古国)이 대두한 후로부터 몽골계로 추정한다.
『신당서』에는 실위의 언어가 말갈과 같다고 하였다.
혼인
남편이 죽으면 재혼하지 않는다.
장례
부모가 죽으면 시신은 숲에서 자라는 나무 위에(혹은 대붕(大棚) 위) 놓고, 사람들은 3년동안 상을 치른다.
부족장
실위에는 통일적인 부족군장이 없어, 각기 부족마다 족장이 있었다. 그 부족장을 「여막불만돌(餘莫弗瞞咄)」, 「걸인막하돌(乞引莫賀咄)」, 「막하돌(莫賀咄)」등으로 부른다. 부족장이 죽으면 그 아우나 아들이 후계를 잇는다. 만약 그에게 후계를 이을 후사가 없으면 부족에 있는 호걸을 천거하고 부족장에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