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갈동의 인구는 37,489명(2017년3월 31일 기준, 내국인)으로 용인시 전체 인구의 3.7%를 차지한다. 남성 18,602명, 여성 18,857명이고 세대수는 13,729세대이며 외국인은 914명이다.[1] 신갈동의 인구구조를 살펴보면 유소년 인구비율은 17.0%로 용인시 전체 18.3%보다 1.3% 적으며 노인인구비율은 9.9%로 용인시 전체 10.3%보다 0.4% 적다.[2]
산업별 종사자 현황
2015년 현재 신갈동의 산업 총종사자 수는 7,433명이다. 이중 도매 및 소매업 종사자 수가 1,665명으로 가장 비중이 높다. 신갈동에는 강남 병원을 비롯한 요양 시설이 많아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종사자가 1,122명으로 두번째로 비중이 높다. 그 외에 교육서비스업 종사자는 773명, 숙박 및 음식업 종사자는 761명, 운수업 종사자는 576명으로 비중이 높다.[3]
문화재 및 유적
경기도용인시기흥구 신갈동 산5번지에서 조선시대 현화사 터가 발견되었는데 현화사지(玄化寺址)는 용인 신갈택지개발지구 중에서 2000년 기전문화재연구원이 약 1,400여 평에 대하여 구제발굴을 했을 때 발견되었다. 발굴 결과 중복된 건물지 2동과 담장지 2개소가 훼손되었다.
유적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은 기와류와 자기류이고 불상대좌도 발견되었는데 출토 기와 중 어골문양과 변형어골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은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에 유행한 것들이다.
특히 '계묘년(癸卯年)', '현화사축완염혜용(玄化寺築完念惠用)”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편이 출토되었는데, 풀이하면 '계묘년에 현화사 축성이 완료되니 은혜롭게 사용되기를 염원한다'라는 내용으로 이 곳이 계묘년(癸卯年, 1483년조선 성종 14년)에 축성된 현화사지(玄化寺址)였음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1020년(현종 11)에 건립되었다는 경기도개풍군 현화사지(玄化寺址)와는 이름만 같을 뿐 관련이 없다.
절터에서 출토된 자기류에는 분청사기와 백자 및 청자 등이 있고 분청사기에는 인화기법과 귀얄기법 등으로 화문양과 점열문양, 나비문양 등이 그려져 있었다. 그릇의 종류는 대접과 접시가 대부분인데 동반 출토된 백자의 그릇의 형태는 대접·접시·종지 등이다. 분청사기와 백자의 그릇의 형태는 15~16세기의 양식으로 분청사기는 15세기경의 것으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