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보군 이복생(石保君 李福生, 생몰년 미상)은 조선의 왕족으로, 조선 제 2대 정종의 아홉번째 서자이다. 시호는 정혜(靖惠)이다.
생애
조선 제 2대 정종의 서자이자, 9남으로 생모는 숙의 윤씨(淑儀尹氏)인 해평 윤씨(海平尹氏)이다. 정부인으로는 학성군부인 원주 김씨(鶴城郡夫人 原州金氏)이 있다. 자녀로는 정부인 김씨가 낳은 장남 연산부정(燕山副正)와 차남 인양부정 정(仁陽副正 整), 3남 곡성군 금손(鵠城君 金孫) 장녀 이씨와 차녀 이씨, 3녀 이씨, 4녀 이씨, 5녀 이씨가 있다. 본성이 청렴검소하고 효성과 우애가 돈독하며 학문에 통달하여 ‘대문장가’라 일컬었다. 그러나 관직에는 뜻이 없어서 늘 산간에 은거하고 세상 일에 관여치 않았다.[1]
1436년(세종 18년) 왕에게 거짓보고 하여 해주의 온정에 목욕한다고 아뢰고는 아버지인 정종의 기신(忌辰)에 기생이 있는 춘천에 가서 순평군(順平君)이라 사칭하고, 여러 날 동안 유숙하면서 매를 놓아 사냥을 하는 등의 행동으로 왕명에 의해 직첩을 회수당하고 외방에 귀양보내졌다.[3]사헌부에서 다시한번 왕을 능멸한 죄를 물어 대죄로 다스리기를 청하였으나 세종이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