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월 8일자 승격으로 알고 있었는데, 반면, 귀하께서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3월이라고 주장하셨던데 어떤게 맞는건가요? 님 말대로 3월 승격이라면 아직 문서명은 읍이 아닌 면이 되어야 할겁니다만. --양념파닭 (토론) 2022년 2월 9일 (수) 02:04 (KST)답변
조정자이신 분께서 출처나 각주를 정확히 확인도 안 하시고, 멋대로 계속 자기 방식대로 옮기면 어떡하자는 겁니까. 서방 각국이 러시아가 하는 행동이 군국주의라고 비난한 것은 이 전쟁 이전부터 계속 있어왔던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걸 전후 반응이라고 옮기고, 더욱이 이미 유엔, 미국, 영국 등의 반응은 위에서 이미 한 차례 언급되었는데, 이것도 깡그리 무시하시면 편집을 하지 말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 Yelena Belova (토론) 2022년 2월 24일 (목) 15:49 (KST)답변
그렇다면 그 주장은 경과 문단에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점에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웬디러비님이 말씀하신 반응에 관해서는 추가적인 내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반응 문단을 새로이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Passinby1 (토론) 2022년 2월 24일 (목) 15:52 (KST)답변
우리나라 언론이 떠든 걸 제가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지금 영어판에서도 섣불리 시시각각 들어오는 정보를 추가했다가 보호를 걸어놨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하나 같이 대하고 있고, 유엔만 현재 전면전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걸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넣을지, "각국의 반응"으로 넣을지는, 해당 전쟁이 더 악화되거나 사태가 더 커지면 넣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2년 2월 24일 (목) 16:04 (KST)답변
영 연방군 가평 전투와 미군 가평 전투를 혼돈하는 경우가 있어서 제가 분리를 했었던 것인데 그러면 종교적 관점으로 문제되는 서술 부분만 다듬으면 되지 문서를 통째로 삭제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이 전투가 소규모 전투이긴 하지만 언론에서도 소개되었고 위키백과에 등재될만한 저명성은 충분합니다. 참고로 1951년 5월 미군의 가평 전투 저 내용들이 처음에 영연방군 가평 전투 문서에 기재가 되어 있었는데 당연히 제가 처음에 위키백과에 작성한 것 아닙니다. 저는 가평에서만 벌어진 공통점 이외에 완전히 별개의 전투가 가평 전투라는 문서 하나에 기재되면서 혼란을 유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당시에 문서 분리만 했던 것입니다.Footwiks (토론) 2022년 2월 26일 (토) 16:29 (KST)답변
2022년 1월 29일부터 시작한 동유럽 에디터톤이 2월 27일 자정으로 모두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한 달 여의 시간,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동안 참여해주신 한 분 한 분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번 에디터톤은 한국에서 일명 '마이너'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동유럽 지역의 관심을 늘리기 위해 당사국과 협력하여 에디터톤과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얼마 전부터 개전하기 시작한 동유럽 지역의 외교 위기와 무력 충돌로 인해 아쉬운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번 에디터톤이 제가 주최한 에디터톤의 끝은 아닙니다. 위키백과 내 문서의 다양성과 내용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지원 방안을 모색해 나갈 계획입니다.
최근바뀜을 통해 반달을 감시하던 중 오랜만에 뵙는 계정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용인 학생"이란 계정명을 기억하시는지요? 한국어 위키백과에 실망감을 느껴 떠나셨는 줄 알았는데 최근 우크-러 전쟁 관련 문서에 기여를 펼쳐주셔서 반가울 따름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다시 돌아오셨다는 긍정적인 시그널로 바라보아도 될까요? 만약 돌아오셨다면 열정적 기여 기대하겠습니다!
원래는 이 아이디를 버리고 아이피 계정으로 꾸준히 활동하려고 했으나, 위키백과 내부에서 통신사 아이피를 차단한다는 토론을 보고, 더 이상 아이피로 활동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아이디를 복구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예전의 과오와 실수가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는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제가 원하는 문서를 편집하는 방향으로 갈까 생각합니다.
Can you update the article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and add sources?
On 15 January 2024,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announced his intention to destroy the monument and that he ended the aim and policy of reunification with South Korea.
According to news reports and satellite images, the monument was destroyed between 19 January and 23 January.
Two paragraphs with sources about this news was added in the bottom of the English Wikipedia version en:Arch of Reunification.
반갑습니다, 웬디러비님!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편집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서 제목을 바꾸기 위해서 잘라내거나, 복사해서 붙여넣기 방식을 이용하신 듯 싶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문서의 편집 이력이 끊기게 되며, 다른 사람의 기존 기여 내역을 찾기 어려워집니다.
계정을 만들고 4일이 지나고 10회 이상의 편집을 했다면, 문서 이동 기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위키백과의 문서를 이동할 때는 문서 위의 이동 버튼(그림에서 '더 보기' 클릭 후 이동)을 이용하셔서 문서를 이동해 주세요. 만약 이동하려는 문서 제목이 이미 존재하거나, 권한이 없어 이동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이동 요청에 요청을 남겨주세요. 위키백과를 편집할 때 궁금한 점이 있다면 길라잡이나 사용법을 참고하시거나, 질문방을 통해 얼마든지 다른 사용자에게 질문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웬디러비님. 사라야 알살람 문서 등에 관해 말씀드립니다. 문서 내용을 대량으로 삭제하실 때에는 편집 요약에 삭제 사유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내용만 지우고 말면 제3자가 왜 삭제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특히 한 줄짜리 정의의 토막글로 만드는 것은 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문서 훼손 정책에 언급되는 "아무 이유 없이 내용을 부분적으로 혹은 모두 지우는 행위 (만일 수정을 위해서 지운다면, 편집 요약에 이유를 적으시는 것이 좋습니다.)"에 해당하여 정책상 오히려 문서 훼손으로 간주되어 삭제 편집이 되돌려질 수도 있습니다. 상세 내용은 위키백과:사랑방/2024년 제7주#문서 내용의 삭제와 관련한 의견을 참고하십시오. --ted (토론) 2024년 2월 22일 (목) 11:32 (KST)답변
해당 정보틀은 오랫동안 한글 변수명들로 사용된 옛 나라 정보틀과는 달리 영어 위키백과와 호환되도록 영어 변수명들을 사용하되 실제 틀을 볼 때는 한글로 나타나도록 아루어진 형식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져 왔기 때문에 갑자기 한글 변수명들로 교체하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일단 편집을 되돌립니다. 만약 한글 변수명들로 교체하고 싶으시다면 토론을 선행하시거나, 틀:신 정보처럼 영어 변수명과 한글 변수명 모두 호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조치를 취해주시길 바랍니다.--Kirschtaria (토론) 2024년 3월 4일 (월) 11:57 (KST)답변
특수:diff/36524429와 같이 내용을 삭제하셨는데 삭제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내용을 삭제하실 때 편집 요약에 삭제 이유를 남기지 않으셔서 질문드립니다. 해당 내용이 지워지면 수리산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태을봉의 수암봉의 어원이나 명칭 변화에 대해 알 길이 없습니다. 가능하면 다른 사용자의 기여 내용을 대량으로 삭제하실 때에는 편집 요약에 사유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ted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09:59 (KST)답변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제공함으로써 독자 연구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지, 독자 연구는 출처 없음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출처가 없는 경우 {{출처}} 틀을 사용하고 적어도 3개월은 유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규정입니다. 그리고 정말 독자 연구로 판단하신다면 어떠한 부분이 독자 연구인지를 편집 요약에 명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독자 연구란 A 출처와 B 출처를 짜집기하여 새로운 사실을 도출해내는 것 또한 독자 연구라고 합니다.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의 어떠한 부분과 연계되는지 설명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ted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11:51 (KST)답변
(1)
먼저 전쟁과 군사 분야의 전문가이시니 더 잘 아시겠지만 전쟁이 벌어지면 전략적인 측면에서 수없이 많은 다리가 폭파되고 즉 다리 폭파는 전쟁 중 일상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이런 모든 다리 폭파 사건이 저명성을 가질 수는 없으며 따라서 모든 전쟁 중 다리 폭파 사건이 위키백과에 등재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한강인도교 폭파는 인명피해자 수치, 폭파 시점, 실질적인 책임자 등 논란적인 사항들이 많고 이런 논란적인 사항들이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에서 핵심이고 중요한 관심사이기 때문에 언론 등에서도 자주 다루었고, 다큐멘터리도 제작되고 등등 이런 저명성을 가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위키백과 문서 등재 기준을 충족합니다.
또한 말씀하신대로 한강인도교 폭파 본 문서에서 논란 사항들을 기술할 수 있으며 저 또한 처음에 논란 사항들을 본 문서에 기술하였고 여기서 편집 분쟁이 생겨나서 토론이 진행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1차 편집분쟁시 토론 흐지부지 되었을 경우 관리자님이 제가 만든 버전으로 돌리라고 했고 호로조님이 3주간 미참여로 토론이 흐지부지되어서 제가 3월 31일에 돌렸는데 다시 2차 편집분쟁이 벌어지고 이때 토론이 벌어진 것으로 호로조님이 문서 내 단락별 비중 문제로 논란 내용을 한강인도교 폭파 문서에 등재하는 것을 반대하셔서 제가 독립시킨 것으로 제가 독립 문서로 만들게 된 상황, 맥락, 시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또한 논란이 사건의 핵심이기 때문에 분량이 많은 논란 사항을 기재하기 위해서 즉 비중을 맞추기 위해서 한강인도교 폭파 문서의 단락들인 배경, 전개, 책임소재에 들어간 내용을 강제로 늘릴 수도 없는 것이며 혹은 한마디로 강제로 논란 요소를 비정상적으로 줄일 수도 없는 것으로,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관련 논란 이 주제 만으로도 저명성을 충족했으며 분량도 독립시키기에 충분한 분량이었기 때문에 제가 독립 문서로 만든 것입니다.
덧붙여 호로조님과의 저와의 토론 내용을 정독하셨다면 서술 고정 시점, 토론 참여 등 여러가지 부분에서 제가 위키백과:토론에서 지켜야 할 점을 어긴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2)
제가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논란 관련 책, 유튜브, 신문 기사 등을 모두 정독하고 줄이고 줄여서 이 정도로 분량으로 만든 것인데 웬디러비님도 관련 자료들을 예를들어 책들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찾아 보시고 이렇게 관련 자료들 전부 정독하고 검토하시면 현재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관련 논란 문서에 중립성, 독자연구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는 것을 알게 되실 것이고 발췌 인용문을 많이 쓰고 이런 문법과 양식에 있어서도 이렇게 기술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실 것입니다.
혹시 나무위키 문서들도 보시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어 위키백과는 이제 참여자가 없어서 집단지성으로 문서가 만들어지지 않지만 나무위키의 한강인도교 폭파 문서는 민간인 인명피해자가 적었다고 주장하는 측, 민간인 인명피해자가 많았다고 주장하는 측 등등 다양한 유저들이 자신들의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관련 자료들을 제시하며 모두 참여하여 현재 알려진 자료들 중에서 중립성과 독자연구 배제하고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제가 나무위키 한강인도교 폭파 문서에도 많은 부분 직접 참여했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도 없고 그리고 위키백과가 제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기 때문에 물론 이제 위키백과 문서 보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위키백과 문서를 풍부하게 만들고 싶어서 위키백과에도 논란 내용을 기재했고 위키백과 규정과 여러 유저들 조언을 받아서 다듬은 내용이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관련 논란 문단입니다.
(3)
저와 호로조님과의 토론을 정독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나무위키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문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근거자료가 맞는지 이런 내용에 관한 논쟁이 편집창에서 간간히 있었는데 한국어 위키백과는 원래 논란 자체를 기술하면 안 되고 단락별 비중이 안 맞아서 논란을 기술하면 안 되고, 인용문을 많이 쓰면 안 되고 호로조님과 토론 주제가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제시한 모든 자료들을 전부 정독하고 혹은 제가 읽지 못 한 새로운 자료들을 입수해서 내용에 대한 학술적인 토론을 기대했는데 이번에도 독립문서로 해야하는지 본문서로 해야하는지 혹은 문법과 양식 등 형식에 관한 토론이네요.
현재 호로조님이 원하는 버전의 토막글 수준인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문서에서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에는 인명피해자 논란 그리고 폭파 시점 논란 등 여러 논란이 있다 이 정도 한 줄 추가 정도 수준의 문서가 사실 현재 활동하는 유저들도 많이 빠져나가고 실제로 문서 보는 사람도 없는 현재 한국어 위키백과 수준에 맞는 한강인도교 폭파 문서에 적당한 내용일 것 같은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웬디러비님이 과거 저와의 악감정 잊어버리시고 전쟁과 군사 분야 전문가로서 한강인도교 폭파 관련 모든 자료들을 검토해 보시고 토론에서 의견을 내 주시길 기대하며 일단 저는 호로조님과 토론에서 충분한 설명했고 많은 부분 반영을 했기 때문에 일단 다른 유저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1)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관련 논란에 아래 내용을 표시하는 틀을 다셨습니다.
"이 문서에는 기여자 고유의 독자적인 연구 또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논란 사항들에 관하여 신뢰할만한 출처들로 제시된 자료들을 전부 꼼꼼히 읽고 검토하여 요약 정리했을 뿐으로 제가 독자적인 연구를 하여 결론을 내리거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담거나 그런 편집은 없습니다.
혹시 실수로 그런 편집이 있거나 출처가 달리지 않아서 독자적인 연구처럼 보이는 문장이 있다면 정정 혹은 출처 보강을 하겠으니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독자적인 연구 또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인지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웬디러비님은 아시겠지만 저는 민원으로 국방부 통해서 내용 확인을 많이하는데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도 이런 식으로 확인을 많이 했고 아무튼 내용상에 있어서 저의 독자적인 연구나 출처가 없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2)
등재기준 입증 틀도 무리가 있는 것이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한번 생각을 해 보십쇼.
한강인도교 폭파가 전시의 평범한 다리 폭파였다면 사실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자체가 위키백과에 문서가 만들어지면 안 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대량의 인명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도 정확한 인명피해자 수치와 인명피해자들의 신원을 모르고, 실제 폭파 책임자가 누구였는지, 폭파 시점 등등 논란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언론과 대중에 꾸준히 회자되어서 저명성을 갖춘 것입니다.
즉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논란 이라고 볼 수 있으며 등재기준이 아니라 논란 내용을 한 문서에서 보여주는 것과 아예 독립 문서로 보여주는 것 둘 중 어느 문서가 독자들이 보기에 편리하고 그럴지가 관건인데 호로조님이 한강인도교 폭파 사건 문서에서 단락별 비중 상 논란 문단을 만들고 여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것을 반대하셔서 이런 맥락 속에서 제가 독립 문서로 만든 점을 참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Footwiks (토론) 2024년 4월 11일 (목) 09:33 (KST)답변
(1) "독단적으로 출처 내용을 분석하거나 정리, 종합하는 행위도 포함"이라는 문구를 보고 독자 연구 금지를 달았습니다. 일단 저도 사용자님과 옛 토론을 통해 사용자님의 편집 방향성, 그리고 편집 정책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 해당 문서를 보면 사망자 수치 및 신원 논란의 개요 부분이 여전히 독자 연구로 판단할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2) 제 의견만 말씀 드리자면,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사건,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하미 마을 학살 사건과 같이 논란이 있는 사건의 경우, 해당 문서의 예하 문단으로 편집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하미 마을 학살 사건의 경우, 문서 역사를 확인해본 결과 사용자님께서 편집자로 참여하셨으니 그 편집 방식과 방향을 이해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여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것을 반대하셔서 이런 맥락 속에서 제가 독립 문서로 만든 점"을 짚어주셨는데, 제 생각에는 해당 문단을 요약해서 핵심사항을 짚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이미 하미 마을 학살 사건에서 논란과 관련하여 편집이 잘 이루어진 걸 보면, 한강인도교 폭파에 대해서도 동일한 편집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문서에서 문단 제목이나 자료의 정리 방향, 그리고 문서 서술이 기존 위키백과 문서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보니 이질감과 위화감이 드는 것은 있습니다.
일단 사망자 수치 및 신원 논란 개요 부분에 문장마다 신문기사 등 출처 제시를 빠트려서 그렇지 여기 내용이 제가 임의로 연구해서 만들어내고 그런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지적하신 의견을 반영하여 최대한 간략하게 줄였습니다.
그리고 한강인도교 폭파 논란 자체는 저명성이 확보가 된 것이고 본 문서에 기술할지 별도의 문서로 기술하지는 기술적인 문제일뿐인데 일단 호로조님이 문단별 비중 문제를 지적하셔서 이를 반영하여 단독 문서로 만든 것이며 본 문서 내에서 문단별 비중대로 기술하게 되면 논란 문단을 10줄 이내로 만들어야 하는데 불가능해 보입니다.
또한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사건, 퐁니·퐁넛 마을 학살 사건, 하미 마을 학살 사건 이런 예시로 든 문서들이 논란 문단이 본 문서에 있으며 논란 문단을 본 문서에 기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적용되어야 하며 일반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위에 예시 사건 관련해서 위키백과 유저 누군가가 엄청나게 많은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여 논란 사항을 자세히 기술하여 분량이 많아지면 독립된 문서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것이며,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논란 문서처럼 논란 사항이 많고 분량이 많으면 이때는 당연히 독립 문서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어떤 사건 관련된 논란 사항이 많아서 분량이 엄청난데 다른 문서들이 논란 내용을 간단하게 기술해서 본 문서에 기재했다고 무조건 이것이 일반적이라고 따르라는 것은 말이 안 되며, 비약하자면 한국어 위키백과에 문서를 풍부하게 만들 유저들이 없어서현재 토막글 수준으로 유지되는 문서들이 많은데 이 문서들을 예시로 들면서 위키백과 문서들은 딱 이 정도 분량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더 이상 확장시키지 못 하게 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서 분량이 당연히 길어지면 읽기 불편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사용자 분들이야 문서를 자유롭게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지도 모르겠지만, 위키백과에 들어오는 분들 (저는 이분들을 독자라 부릅니다)도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키백과에 문서를 풍부하게 만들 유저가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문서들이 지나치게 길고 지루한 것도 한 몫 한다고 봅니다. 사용자들이 읽고 흥미를 느껴야 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되는데 길어버리기까지 하면 당연히 관심을 끊을 수밖에 없겠죠.
논란 자체를 넣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해당 사건에 논란이 있다면, 당연히 논란을 서술하는 것이 위키백과:중립성에도 어긋나지 않으니까요. 다만 해당 문서가 별도로 독립 문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위키백과:함께 검토하기나 위키백과:의견 요청 등을 통해 다른 분들의 의견도 들어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물론 저는 아직까지 신중한 입장입니다만, 만약 문서가 별도로 유지되어도 괜찮다는 총의가 형성된다면, 얼마든지 해당 문서를 수정하고 고치는데 협력할 예정입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4월 16일 (화) 08:45 (KST)답변
안녕하세요 웬디러비님, 저는 해당 정책 속 내용에 관해 이견이 있는 부분은 없지마는 현재 정책 수립을 위한 토론이 생각보다 정체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다른 관리자님께서도 그렇고 웬디러비님을 포함해 다른 분들도 해당 항목에 관해 의견 제시를 요청하긴 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아 토론이 더욱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당 내용이 참가자님들에게 너무 어려운 것인지, 아니면 개인 사정으로 인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현재 추가적으로 의견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문서에 관해 편집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토론의 발제자이신 웬디러비님께서 일정한 조치를 취해주셔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4년 5월 17일 (금) 09:46 (KST)답변
안녕하세요 웬디러비님, 노랑거북입니다. 일전에 미영 전쟁의 문서 제목에 관련해서 토론을 한 번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혹시 해당 토론의 결론이 어떻게 되었는지 의견을 여쭤도 괜찮으실까요?? 언젠가부터 토론이 의견 요청란에 보이지 않아서 혹시나 토론이 방기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사토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YellowTurtle9 (토론) 2024년 8월 2일 (금) 11:01 (KST)답변
등재 기준의 체계화에 대해 사랑방에 의견을 남겨 보려고 합니다만, 제가 현 등재기준상 문제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만약 괜찮으시다면 어떤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등재 기준을 체계화해야 하는지 해결해야 할 문제 사항에 대한 내용을 제공해 주실 수 있으실지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Jeebeen (토론) 2024년 8월 21일 (수) 16:22 (KST)답변
현재 제가 한위백에 느끼는 문서 등재 기준의 경우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니 체계적으로 문서를 정리하거나 또는 불필요한 문서를 삭제해야 할 경우 사용자들 간의 의견 충돌 또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토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성문화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노곡중학교의 건 처럼 이전 합의 또는 "총의"를 바탕으로만 문서 유지/삭제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해당 총의를 오랫동안 알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위키백과 영어판처럼 분야별로 문서 등재 기준을 보다 체계적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위키백과: 문서 등재 기준 (인물)의 경우, 정치인, 종교인, 군인, 예술인 등으로 분야를 세분화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한위백 문서 등재 기준으로는 현재 한위백의 상황을 100% 반영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8월 21일 (수) 17:13 (KST)답변
편집 요약에 빠트림 없이 '영어 위키 번역'이라는 글을 남기면서 고생하며 번역을 투고하고 있는데, 어째서 아무 이유 없이 NewJeans 문서에서 번역된 내용을 삭제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위키백과:사랑방/2024년 제38주#액션 영화와 같은 토론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어 위키백과 번역을 통 삭제한 것으로 인해서 사용자분들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웬디러비님은 편집 요약에 이유도 안 밝히고(아니면 문서 토론에다가 글을 남기지 않은 채) 다른 사용자의 기여를 지우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왜 다른 사용자가 애써서 번역한 내용을 그냥 막 지우시는 건가요? 지우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하는 거라기 보단 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지우는 건지에 대해서가 핵심 논의 주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2001:E60:9142:4167:71:62B0:E078:B8CE (토론) 2024년 9월 23일 (월) 13:58 (KST)답변
출처가 없는 경우 {{출처}} 틀을 사용하고 적어도 3개월은 유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규정입니다. 그리고 정말 독자 연구로 판단하신다면 어떠한 부분이 독자 연구인지를 편집 요약에 명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독자 연구란 A 출처와 B 출처를 짜집기하여 새로운 사실을 도출해내는 것 또한 독자 연구라고 합니다. 위키백과:독자 연구 금지의 어떠한 부분과 연계되는지 설명해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ted (토론) 2024년 3월 8일 (금) 11:51 (KST)
중간에 토론이 지워져서 제 의견을 추가로 드립니다. 저는 처음부터 그런 출처 밝히기의 중요성은 몰랐습니다. 출처가 없다고 말씀하시니까, 웹 브라우저에서 '출처'라고 검색하니까 그냥 나와있는 얘기를 말씀드린 건데요. 아무 이유 없이 지우는 것과 관련해서는 제가 처음 드리는 얘기도 아닌 것 같고.... 워낙 영어 번역을 지우는 사용자들이 많으니까 도대체 지우는 이유를 몰라서 질문을 드린 것일뿐이에요. 2001:E60:9142:4167:71:62B0:E078:B8CE (토론) 2024년 9월 23일 (월) 14:24 (KST)답변
위키백과:선의에 보시면, 사용자들이 출처를 달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서로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먼저 출처를 달아주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집 요약의 경우, 저는 해당 요약을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이 태도가 잘못된 것이기에 지속적으로 고쳐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Yelena Belova (토론) 2024년 9월 23일 (월) 14:25 (KST)답변
네, 앞으로 최대한 출처를 달겠습니다. 지우는 이유가 출처 부족이었다면 이미 보강하고 끝났을 것 같아요. 그리고 웬디러비님께도 간곡히 요청을 드리겠습니다. 위에 이미 여러 번 얘기가 나온 것이겠지만 혹시 다른 사용자의 기여를 지우신다면 이유를 최대한 요약에 남겨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여를 할 때마다 많은 분들이 그냥 지우거나 넘겨주기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왜 지우는지 모릅니다. 이래서 내가 기여해봤자 어차피 지우는데 계속 편집을 할 이유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만 명확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추가 의견:회원가입이 실패하고 있어서(아마 컴퓨터 문제인 것 같아요) 지금은 IP로 활동 중이나 당연히 가입해서 활동할 거에요. 이해 부탁드려요~~ 2001:E60:9142:4167:71:62B0:E078:B8CE (토론) 2024년 9월 23일 (월) 14:28 (KST)답변
NZ 토끼들님 안녕하세요. 시리아 주재 소련 군사고문단의 각주를 검토하였는데, 깨져있거나 저자 이름만 있고 제목은 없는 Moubayed 2012, 153쪽.", "Ginat 2010, 150쪽." 같은 출처가 발견됩니다. 두 출처는 러시아 판과 벨라루스어 판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남은 이틀 동안에도 아시아의 달 마무리를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NZ 토끼들님이 주최하고 계시는 독소전쟁 에디터톤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자만 참가자 분들이 어떤 문서를 만들어 가시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NZ 토끼들님이 생성하신 제2차 세계 대전의 몽골과 Twotwo2019님이 생성하신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의 불가리아의 경우를 비교해 보았을 때 표제어의 형태가 다릅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살펴보니 덴마크의 경우 제2차 세계 대전 중의 덴마크라고 되어 있기도 하고요. 따라서 표제어를 한 가지 방식으로 통일해야 좋지 않을까 싶은데, 혹시 이에 관해서 기존에 토론이 진행된 바가 있는지, 아니면 어떤 표제어 형태로 통일하면 좋을지 의견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Nt2025년 1월 18일 (토) 01:29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