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전쟁 종전 후에는 1945년8월 15일 8.15 해방 이후 미군정 하에서 고려대학교 법과 교수로 임용되어 학계에서 잠시 활동하였다. 1948년 국무총리 이범석의 비서관이 되면서 다시 관계로 돌아갔다. 1952년에는 기획처 물동국장 및 한미합동경제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제3공화국에서는 《사상계》에 기고하며 문필 생활을 하였고, 1967년에는 신민당에도 입당하여 박정희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활동했다. 장준하는 사상계가 경영난에 빠지자 강원용을 찾아 인수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한 뒤 그에게 사상계를 넘겼다.[2] 그러나 강원용에 의하면 전임자인 장준하와 갈등했다고 한다.[2]
부완혁이 사상계 발행인을 맡아 경영하던 중, 1970년에 박정희 정권의 부패를 비판한 김지하의 담시 〈오적〉으로 인해 사상계가 폐간되었다.
만년
1976년에는 맏사위 신선호가 설립한 율산그룹 회장을 맡아 경영인으로의 변신을 꾀했으나 회사가 해체되어 성공하지 못했다.[3] 저서로 《신제국주의》, 《국제공산당과 세계혁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