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구 아미동에서 태어났으며 혜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언어학과에 입학해 언어학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1986년 노학연대 투쟁에 활동하던 중 1986년 4월 1일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되었다가, 1986년 7월 15일 징역 10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1987년 1월 13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소속 수사관 6명에 의해 연행되었다.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 받고 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서였다. 박종철은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다가 14일 숨졌다.[2]
박종철은 2001년 2월 26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유족과 당시 학생운동 동지들은 경기도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가묘를 만들어 그를 기리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과 중앙도서관 사이에 세운 그의 추모비와 흉상은 학내 ‘민주화의 길’ 가운데 한 지점으로 지정되어 있다.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박종철 열사의 꿈을 받들고 기리기 위해 박종철기념사업회가 만들어졌다. 이 사업회는 2007년 박종철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과 대학문화연구회 회원들의 모금으로 (사)민주열사 박종철기념사업회로 되었으며, 박종철인권상을 제정하고 매년 수상자를 선정하는 등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하고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1987》이 2017년 12월 27일에 개봉하였다.
2018년 1월 13일, 모교인 서울대학교 근처에 있는 신림동 대학5길에 박종철거리가 조성되었다. '박종철 거리' 지정사업은 관악구 주민들로 구성된 '마을관광사업추진단'이 2017년 박 열사의 3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구청에 사업을 제안하면서 기획됐다.[3]
2018년 3월 10일, 문무일검찰총장은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인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를 만나 사과를 전했다. 현직 검찰총장이 과거사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4] 이후 7월 28일 박정기 씨는 별세했고, 문대통령은 고인에 대해 “청천벽력같은 아들의 비보를 듣는 순간부터 아버님은 아들을 대신해, 때로는 아들 이상으로 민주주의자로 사셨습니다”라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