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48인은 1919년3·1 운동 때 기미독립선언서의 기초와 서명, 인쇄 및 배포, 탑골공원 만세 시위 등 3·1 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참가한 핵심 인사 48명이다. 보통 민족대표 33인 외에도 3·1 운동의 계획과 조직에 가담하거나 연락한 인물들을 추가하여 설정한다. 이는 출국이나 교통편 등으로 미처 연락이 닿지 못한 민족대표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고려한 의견이기도 하다.
본래는 이 사건으로 일본 제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48명, 즉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3·1 운동 직후 해외로 망명하여 체포되지 않은 김병조와 재판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구금 중 사망한 양한묵을 제외한 31인에 박인호 등 17인을 더한 인원을 가리키나, 편의상 민족대표 33인에 15~16인만 더해서 민족대표 48인, 중앙지도체 48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