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입문 전 유니레버에 근무했다. 2002년 총선 후 자유민주국민당이 얀 페터르 발케넨더 총리의 연정에 참여하면서 사회복지고용장관에 지명됐다. 2003년 총선에서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2004년 2기 발케넨더 내각의 교육문화과학장관이 됐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자유민주국민당이 대패한 후 요지아스 판 아르천 대표에 이어 당대표가 됐고 장관직을 사임했다. 2006년 총선에서 6석을 잃긴 했지만 제2야당이 돼 원내 위상을 유지했다.
네덜란드 총리 (2010~2024년)
2010년 총선에서 자유민주국민당은 당 역사상 처음으로 원내 1당이 됐다. 긴 연정 협상 끝에 2010년 10월 14일 총리로 취임하여 92년 만에 첫 리버럴 총리이자 네덜란드 역사상 두 번째로 젊은 총리가 됐다.[3]
2014년 4월 예산 협상이 결렬돼 뤼터 정부는 와해됐고 이어진 조기 총선에서 자유민주국민당은 당 역사상 가장 큰 승리를 거둔다. 총리로 복귀한 뤼터는 자유민주국민당(VVD), 노동당(PvdA) 연정을 이끌었다. 이 내각은 1998년 이후 처음으로 4년 임기를 채운다. 2017년 총선에서 자유민주국민당은 의석을 잃었지만 여전히 원내 1당을 유지했다. 기록적인 길이의 협상 끝에 자유민주국민당(VVD), 기독민주당(CDA), 민주66(D66), 기독연합당(CU)이 새 연정을 구성했고 2017년 10월 세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했다.
세무 당국이 다수 주민에 대해 아동수당을 부정 수급했다는 거짓 혐의를 제기한 스캔들이 발생하자 2021년 1월 뤼터 내각은 사임했다.[4][5][6] 하지만 2021년 총선에서 자유민주국민당은 4연속 원내 1당이 됐고 또 한 번 기록적 길이의 협상 끝에 2022년 네 번째 임기에 들어간다.[7] 정치 스캔들에서 평판을 손상시키지 않고 빠져나오는 능력 때문에 '테플론 마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8] 2022년 8월 2일 뤼트 뤼버르스(1982~1994)를 제치고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총리가 됐다.[9][10] 연정 내에서 난민 정책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2023년 7월 7일 사임을 발표했고, 이어 10일에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11]
"더는 자유민주당 대표직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총선 이후 새 연정이 출범하면 정계를 떠날 계획입니다."
— 2023년 7월 10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2023년 총선 이후 총리직을 대행(caretaker)하다가,[12] 2024년 딕 스호프 신임 총리가 취임하면서 물러났다.
나토 사무총장 (2024년~현재)
뤼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 장기화하고 미국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나토 사무총장직에 취임하였다. 그는 방위비 확충, 아시아·태평양 지역 파트너와의 관계 강화, 우크라이나 지원 등 세 가지를 나토의 향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취임 후 첫 브리핑에서 그는 “호주와 일본, 뉴질랜드, 한국이 나토 국방장관회의에 사상 처음으로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13]
한국과의 관계
2016년 9월 국빈방한하여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였다. 이 회담으로 양국은 수교 55주년을 맞아 양국 간 우호협력 관계를 '포괄적·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하였다. 그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네덜란드 경제사절단 만찬에서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에 새로운 비즈니스의 성공을 가져올 수 있는 많은 새로운 기회와 파트너십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하였다.[14]
"양국 관계는 역동적이요, 미래를 위한 많은 약속을 제시합니다....양국과 같이 개방적이고 서로 연결된 사회에서는 창조산업이야말로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서로 도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 뤼터 총리의 한·네덜란드 경제사절단 만찬사 중 (2016년 9월 27일)
또 국빈방한 기간 서울시를 찾아 '서울시 명예시민증'을 받고 자전거 220대를 선물하였다. 이 자전거는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로 쓰이게 된다.[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