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최초의 민영방송국으로 나중에 개국한 류큐아사히 방송(아나운스·보도 취재·일부 영업 관계등을 제외한 다른 업무는 류큐방송에 위탁하고 있다)과 사옥을 같이 쓰고 있다.
2011년7월 22일다이토 제도에 텔레비전 중계국이 설치되기 전에는 오키나와 현지 텔레비전 방송국 대신 도쿄에서 오가사와라 제도전용으로 방송되고 있는 위성전파를 이용해 네트워크 중심방송국인 도쿄 방송(TBS)을 시청했으며 오키나와현의 정보는 전화 회선에 의한 자막형태로 삽입되고 있었다.
1972년5월 15일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에 의해, 호출 부호를 텔레비전은 JORR-TV, 일본어 라디오는 JORR, 영어 라디오는 JORO로 변경.텔레비전 채널도 미국식에서 일본식으로 변경된다(나하 US12ch→JA10ch, 구메지마 US7ch→JA4ch).동시에 일본 민영 방송국 자격으로 JNN·JRN에 정식 가맹.
1973년11월 1일 영어 라디오 방송 JORO 폐지. 호출 부호 JORO는 미야코 라디오 중계국으로 이전.
1978년11월 23일 라디오 주파수가 변경된다(나하 740→738kHz, 미야코 1150→1152kHz)
1981년1월 26일 카카즈 텔레비전 송신소의 문제로 저녁에 방송이 멈추어 버리는 방송 사고가 있었다.
1985년6월 1일 텔레비전 송신소를 카카즈 송신소에서 도미구스쿠 촌(현재의 도미구스쿠 시) 다카야스에 이전.동시에 음성다중방송 개시.
1993년12월 16일 오키나와 TV와 공동으로 사키시마(미야코·야에야마 제도) 텔레비전 중계국 개국.
1995년9월 28일 나하 라디오국의 출력을 10kW로 증력(사옥을 같이쓰는 류큐아사히 방송이 개국하기 때문에 출력을 증력시켰고 그로 인한 송신소 갱신 공사를 위해 그 해 3월과 6월말~8월의 토일요일 방송을 심야 1시에 종료했다)
1995년10월 1일 RBC와 TV 아사히가 중심적으로 출자한 류큐아사히방송(QAB)이 개국하면서 TV아사히계열 프로그램을 류큐아사히방송으로 옮긴다(2002년 민교협가맹을 통해 민교협관련 프로그램만이 방송된다).
이전에는 중파 1152kHz로 방송. 2005년 4월 방송 개시. 콜사인 JORO가 있었으나 폐지되었다.
타라마 중계국
82.2 MHz
3W
2005년 4월 방송 개시.
이시가키 중계국
89.0 MHz
100W
2004년 4월 방송 개시.
소나이 중계국
83.9 MHz
10W
2004년 4월 방송 개시.
요나구니 중계국
84.7 MHz
10W
2004년 4월 방송 개시.
미나미다이토 중계국
81.4 MHz
10W
2007년 4월 방송 개시.
텔레비전 네트워크 변천사
1960년6월 1일 류큐정부에서 텔레비전 면허를 교부받으면서 개국.NHK·니혼TV·도쿄 방송·NET-TV의 프로그램을 방송했지만 일본과의 마이크로회선이 개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테이프를 통한 녹화방송이었다[1].이때 뉴스 네트워크 JNN에 가맹하지만 당시는 류큐지국의 형태였으며 네트워크 뉴스는 방송할 수 없었다.
1964년10월 1일 그 해 9월 일본과의 마이크로 회선이 개통하면서 네트워크 뉴스 방송이 가능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도쿄·오사카로부터의 동시방송이 가능하게 된다.이후 정식으로 뉴스는 JNN완전가맹, 프로그램은 프리 네트워크 방송으로 결정했으며 방송수준이 일본본토 같은 수준으로 비약한다.
1995년10월 1일 TV아사히와 출자해 설립한 류큐 아사히 방송 개국에 의해 TV아사히 프로그램이 방송중단된다.
2002년4월 1일민간방송 교육협회가맹에 의해 민교협 제작분만 한정해 TV 아사히 프로그램 방송을 재개한다.현재는 TBS 완전가맹국이지만 니혼TV 프로그램을 오키나와 TV 방송과, TV 도쿄의 프로그램은 오키나와 TV 방송과 류큐아사히방송이 공유하는 프로그램 판매 형태로 방송을 계속하고 있다[3].
보충서술
라디오 방송국 송신소는 나하 본국만 중파(AM)로 방송되며, 그 외의 지역에 설치된 중계국(오키나와 섬 북부·사키시마 열도·다이토 제도 등)은 외국 방송과의 혼신으로 인한 난청문제 때문에 초단파(FM)로 방송되고 있다.
미야코지마 중계국은 1964년부터 2005년 5월까지 중파로 방송을 송출하던[4] 미야코 중계방송국이었으며, 중파방송 송출이 중단되기 전 마지막 1개월 동안에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FM중계국과 동시 방송을 실시했었다.
이시가키 중계국이 설치되기 전까지 이시가키섬 주민들은 미야코 중계국을 통해 방송을 수신하거나, 섬의 독자적인 라디오 방송국 또는 중앙 방송 설비를 통해 수신하기도 했다.
RBCi 라디오의 「라디오」부분 가타카나 로고는 키국인 TBS가 1991년까지 사용하고 있던 「TBS라디오」의 로고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1990년대 초, 현내에서 폭력단 항쟁으로 일반 시민과 경찰관이 사살된 사건이 있어 당시 TBS계열에서 방송되던 폭력단 관련영화를 다른 프로그램으로 교체했으며 오키나와테레비에서도 폭력단을 테마로 한 영화는 모두 다른작품으로 교체해 방송했다.이때의 영향으로 지금도 폭력단 관련영화는 되도록 방송하지 않고 있다.
RBC 주최 이벤트 고지CM을 RBC뿐만이 아니라, QAB에서도 방송되는 일이 있다(그 경우 「주최·류큐 방송」을 「주최·00실행 위원회」로 하거나 「문의·RBC 사업부」를 「문의·00사무국」으로 바꿔쓰는 등 RBC의 회사명을 숨기로 자막을바꾸고 있다.덧붙여서 RBC 관계의 이벤트의 경우, QAB는 대부분 후원사가 되고 있다).
최근,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의 스폰서에 그 애니메이션과 연관된 업체를 채택하고 있다.(예:호빵맨에 오키나와현 제빵 협동조합)
불상사
1988년, 쇼와 천황이 더 빨리 종전을 선언했으면, 오키나와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했고 다큐멘터리는 현내외에서 파문을 일으켰으머 이에 대해 우익 단체가 류큐방송 앞으로 밀어닥쳐 류큐방송과 근접한일본국도 58호가 마비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1992년 RBC 특집 보도 부에서 새로운 이시가키 공항의 건설을 둘러싸고, 건설 추진 파에 거액의 뇌물이 있었다고 방송하였고 이에 대해 자유민주당 오키나와 현 의원이 항의하는 소동이되었다.
2007년7월 15일 관련 회사에서 류큐 방송으로 파견된 카메라맨이 택시 운전기사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