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에 들어설 무렵(1789-1850), 랑드 데파르트망은 황야(landes)에서 지역명을 따왔듯이 심각하게 메마른 황야(약 60-70%)가 대부분이었으며, 남쪽 경계는 경작되고 숲이 우거진 비옥한 토지의 언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황야 지역은 수많은 양떼(1850년에 900,000마리에서 백만마리 사이에 육박한)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화전으로 유지되었으며, 죽마에 올라간 목동이 양떼를 감시했다. 죽마를 사용함으로써 목동은 양떼들을 감시하며 긴 거리(하루에 15-20km)를 거의 기복 없이 더 쉽게 갈 수 있었다. 1857년 6월 19일 가스고뉴 랑드 개편 및 경작화 법 이전의 랑드에서는 농경-목축 체제가 일반적이었다. 이 체제는 공유지 대부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데서 힘을 얻었다. 19세기 후반 동안의 공유지 매각으로 인해, 송진과 목재를 사용하고자 시행된 소나무 플렌테이션이 체계화되면서 랑드 데파르트망 2/3의 풍경과 경제는 완전히 바뀌었으며, 이는 랑드 데파르트망의 급격한 부유화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