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공산당은 주요 목표가 공산주의이기도 했지만 구성원은 중도좌파에서 극좌까지 세심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해방 후 조선공산당은 남조선노동당, 사회당 등등 여러 계열로 나뉘게 된다. 조봉암의 진보당은 역사적 기반의 경우는 조선공산당에 뿌리를 두었지만,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중도좌익의 진보정당이었다. 또한 재야 진보 정치인들도 진보 정치의 주류 인사로 분류된다. 대한민국 내에 존재하는 진보정당은 1950년대 후반에 걸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 로동당과 똑같은 좌익세력으로 분류되어 대부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숙청되었고, 약 30년 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1980년대부터 학생 운동권의 주축을 이루어 온 민족 해방(NL)과 민중 민주(PD) 계열이 새로이 진보정당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PD계열의 일부 세력은 국민승리21 창당 이후인 1998년 사회당을 창당했다.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양 세력은 통합을 논의했지만, 2001년 원용수 당시 사회당 대표는 "민중의 요구보다 조선노동당의 외교정책을 우위에 놓는 종북 세력과는 함께 당(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2]
진보진영과 민중세력의 세분화 시대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명을 당선시키는 파란을 일으켰으나, 당내 양대 세력인 NL과 PD의 이념 차이, 다수파인 NL의 패권주의 등의 문제를 결국 극복하지 못했다. 2008년 당내 PD 세력인 조승수, 노회찬, 심상정 등은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이후 민주노동당은 야권연대 전략을 통해 2010년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3명을 배출하는 등 성과를 냈으나, 독자전략을 고수했던 진보신당은 상대적으로 적은 성과를 내는데 그쳤다.
2011년 초부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진보대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애초 분당의 원인이었던 이념 차이, 패권주의 문제가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데 이어, 친노무현 계열의 국민참여당의 진보대통합 참여를 둘러싼 이견 때문에 진보대통합은 결렬됐다. 이후 진보정당 운동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가 합당한 통합진보당과 사회당과 합친 진보신당의 두 갈래로 이어져갔다. 넓은 의미에서 녹색당까지 진보정당으로 포함하기도 한다.[3][4]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3명을 당선시킨데 반해 진보신당은 원내 진출에 실패한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은 총선 이후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으로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등 NL 다수파(구주류)와 인천연합 등 NL 소수파, 국민참여당 계열, 진보신당 탈당파(혁신파)로 분당했다. 분당파는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2012년 총선 이후 등록취소된 진보신당은 '진보좌파정당' 건설을 목표로 재창당을 했다. 2012년 대선에서 통합진보당은 이정희, 진보정의당은 심상정을 대선후보로 선출했지만 둘 모두 중도사퇴했다. 진보신당은 대선후보를 내지 않고 김소연 무소속 후보를 지원했지만, 진보신당 일부 세력은 김순자 무소속 후보를 지지했다.
2011년12월 6일 야권소통합의 일환인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새진보통합연대의 합당으로 출범한 정당이다. 기본적인 입장은 민주노동당과 비슷하다. 약칭은 진보당이다. 당명을 정할 때부터 계파간의 불협화음이 있었다. 그러다 2012년 총선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어 이른바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결국 이 사태를 계기로 민노계 일부, 참여계, 진보신당 탈당파의 상당수가 탈당해 진보정의당을 창당했다. 뒤이어 18대 대선에서는 이정희가 기호 3번으로 출마했으나 중도에 사퇴했다. 현재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끝나고 3기 지도부가 출범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정희, 이석기, 김재연, 유선희, 황선, 김홍렬 등이 있다. 그러나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명 중 인용 8명, 기각 1명의 의견으로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보고 해산시켰다.
2008년 3월 16일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한 민중 민주계 당원들을 중심으로 창당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기본적인 입장은 민주노동당 등 여타 진보정당과 비슷하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실제 2011년 당대회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3대 세습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당 강령으로서 밝혔다. 2011년 말 진보대통합에 참여하여 통합진보정당 출범에 참여하려 했으나 당대회에서 합의안을 부결시켜 무산되었다. 이후, 상임고문으로 있던 노회찬, 심상정 등이 탈당했다. 2012년 총선 직전에는 사회당과 합당했다. 그러나, 2012년 총선에서 득표수 미달로 등록 취소되었다.
등록 취소로 2016년까지 진보신당이라는 명칭도 사용할 수 없어 진보신당 연대회의라는 이름으로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재창당활동을 완료하여 2012년10월 22일 재창당 절차를 완료하였다. 당색은 빨간색이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였던 김순자가 출마하려 하였으나, 당에서 독자후보를 내지 않기로 하자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후, 진보신당은 공식적으로 무소속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였다. 이듬해 2월, 녹색사회주의를 내건 이용길이 경선을 통해 당 대표로 취임하였다. 진보정치 재건을 위해 2013년7월 21일에 임시당대회를 열어 노동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대한민국의 생태주의 정당이다. 2012년3월 4일, 녹색당으로 창당했으나, 19대 총선 결과, 지역구 및 비례대표에서 의석 획득에 실패하고 정당득표에서도 0.48%을 얻어 등록 취소되어 4년 간 동일 당명을 사용하지 못하는 규정에 의거, 2012년 10월 녹색당 더하기로 당명을 바꾸어 재창당하였으나, 해당 조항인 정당법 제41조4항, 제44조1항3호가 2014년1월 28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따라 무효화되어 2014년 2월 19일에 중앙선관위의 승인으로 원래 당명 '녹색당'을 되찾았다. 현재 중앙선관위 등록 명칭은 녹색당이다.
정의당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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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5일에 창당된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이다. 2017년 10월 15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새민중정당과 민중연합당 양당의 수임기관 합동회의를 통해 합당을 공식 완료하고, 오후 2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 전쟁 없는 나라', '민중에게 권력을, 민중에게 행복'을 대회 슬로건으로 내걸고 1만여 명의 전국 당원과 함께 민중당 창당을 선언하며 "촛불혁명의 계승, 자주와 평화, 비정규직 철폐를 향한 진보 단결의 대장정을 시작한다."고 하면서 "노동자, 농민, 빈민, 청년 여성들의 직접 정치 운동의 확대로 새로운 정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밝히는 광장 출범식을 개최하였다.
2020년 진보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