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과 메신저라는 그룹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98년에 발표한 4집 이후부터이다. 김장훈은 선행을 많이 하는 연예인으로 널리 알려져있기도 하다. 그의 누적 기부액은 200억원에 달해[1] 2002년 기자들이 뽑은 2001년 최고의 선행 연예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6년 광주 비엔날레 공식 가수로 위촉되었다.
생애 및 경력
어린 시절, 가요계 데뷔
김장훈은 서울특별시마포구에서 개신교 목사인 어머니 김성애[2]의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 그 후 경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다녔으나, 음악 활동 등을 이유로 끝내 중퇴하였다.
김장훈은 대학 시절을 전후한 시기부터 전인권과 김현식과 유재하를 흠모하고 동경하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한다. 그는 1987년 언더그라운드라이브 클럽에서 가수로 첫 데뷔를 하였고 1991년 1집 앨범 늘 우리 사이엔을 통해 가요 분야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기부 및 애국 활동
김장훈은 그동안 150억원 상당을 기부해왔던 선행이 알려지며[3] '기부천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이런 기부금액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인 월 120만 원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4] 또한 그는 독도를 홍보하기 위해 기부하고,[5]서경덕과 함께 세계 언론사에 '일본해'로 표기된 것을 '동해' 표기로 정정요청을 하고,[6]월스트리트저널에 '동해' 표기가 옳다는 전면 광고를 서경덕과 함께 사비를 털어 낸 후 월스트리트 저널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해 보다 먼저 동해라고 표기해 그 성과가 인정받았다.[7]태안 기름유출 사건 때도 수억원을 기부하고, 자원봉사자들과 단체로 태안 봉사활동을 하러 수차례 가기도 하였다.[8] 뿐만 아니라 김장훈은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에도 관심이 많아, 과학발전을 위해 카이스트 응원 광고를 사비로 게재하였다.[9]카이스트는 이러한 김장훈을 위해서 콘서트 무대장치를 설계, 설치해 주었으며, 무대 장치에 관한 수업도 실시하였다.[10]
2010년 12월에는 10억원의 거액을 기부하면서 김장훈의 선행이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11] 그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연예인의 기부는 알리는 편이 낫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12]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대한민국 홍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서경덕과 함께 독도를 지키고 광고하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김장훈은 교과서에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기재하려는 일본을 "얍삽하다"며 맹 비난했다.[13] 2011년 일본에서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과 관련해 김장훈이 '일본을 돕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히자 2011년 4월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논평을 통해 김장훈을 비난했다.[14]
그는 이러한 애국, 기부 행위들이 알려지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정치를 잘 할 것 같은 연예인 1위에 뽑히고,[15] 대통령 표창 수여자로 선정되기까지 하였으나 김장훈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16] 또한 김장훈은 자신의 '기부천사'이미지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17]
논란
기내 흡연 사건
김장훈은 2015년 1월 15일 프랑스 드골 공항을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낮 12시 30분에 흡연을 하다가 적발됐다. 1월 19일 대한민국 검찰은 김장훈에 대해 항공보안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18]
테이큰 3 불법다운로드 논란
2015년 2월 19일 아랍어 자막의 《테이큰 3》를 다운로드한 사실을 SNS에 게재했고, 이에 네티즌들이 불법 다운로드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합법 다운로드 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테이큰 3의 배급사 측에서는 아랍어 자막 및 서비스는 한국에서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불법 다운로드 의혹을 제기하고 비판한 사람들을 일베저장소 회원으로 판단하고 어묵이나 먹고 감방 가라는 발언을 하여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어묵에 빗대어 비하해 파문이 일었다.[19] 한편 그 반면에, 다운로드 자체에 대해서는 고의성이 없어 위법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