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부터 1913년까지 인쇄소에서 도제로 일했으며 1910년 독일 사회민주당의 청년 조직인 사회주의 노동청년단에 가입했다. 1913년 독일 사회민주당에 입당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15년 독일군에 징집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는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신문사에서 근무했고 1928년부터 1933년까지 바이마르 공화국 국가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1949년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성립과 함께 설립된 인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에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60년에는 국가평의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71년에는 국가평의회 부의장으로 임명되었다. 1973년8월 1일발터 울브리히트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한 뒤부터 1973년 10월 3일 빌리 슈토프가 국가평의회 새 의장으로 선출될 때가지 국가평의회 의장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1979년 동베를린에서 사망했으며 카를 마르크스 훈장, 조국 공로 훈장, 인민 우정 훈장을 받았다. 1967년 동베를린 시장 퇴임과 함께 동베를린의 명예 시민으로 위촉되었지만 독일의 재통일 이후인 1992년에 취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