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6년 아버지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가 죽을 때 안스바흐만을 물려받았으나, 동생 지기스문트 사후 쿨름바흐와 바이로이트의 백작직위를 차지했으므로 프리드리히 2세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바이로이트(Frederich II von Ansbach-Bayreuth)라고도 부른다. 폴란드의 공주인 카지미에시 4세의 딸 폴란드의 소피아와 결혼했던 그는 폴란드식 이름도 사용했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가문에서 갈라진 몇몇 분가의 시조였다.
프리드리히는 아내 폴란드의 소피아 야기에우워와의 사이에서 11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둘째 엘리자베트, 일곱째 바바라, 열여섯째 프리드리히 알베르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했다. 프리드리히는 폴란드식의 이름도 있었는데 폴란드에서는 프레드릭 스타헤르 호엔졸레른(Fryderyk Starszy Hohenzollern)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그밖에 폴란드에서는 그를 가리켜 카이제 바이로이트(książę (Fürst) Bayreuth)라고 불렀다. 폴란드와의 인연으로 그는 호엔촐레른 가문이 프로이센을 획득하는 바탕을 제공한다.
프리드리히는 계속 폴란드에 결혼 지참금을 요구했다. 1489년 소피아의 오빠 블라디슬라프 2세는 그의 아버지가 주지 못한 결혼 지참금의 나머지 돈을 지불하겠다고 프리드리히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소식이 없자 부인 소피아 야기에우워는 오빠 블라디슬라프 2세에게 지참금을 지급할 것을 요청했다. 1493년 프리드리히는 결혼 지참금을 요구하는 사절을 폴란드 왕국에 보냈다. 1495년9월에 아내 소피아는 개인적으로 약속된 돈을 요구하는 편지를 자신의 오빠에게 보냈다. 그러나 폴란드 왕국은 소피아와 프리드리히가 죽을 때까지 남은 결혼 지참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Theodor Hirsch: Friedrich der Ältere. In: Allgemeine Deutsche Biographie (ADB). Band 7, Duncker & Humblot, Leipzig 1877, S. 480.
Reinhard Seyboth: Die Markgraftümer Ansbach und Kulmbach unter der Regierung Markgraf Friedrichs der Älteren (1486-1515) (= Schriftenreihe der Historischen Kommission bei der Bayerischen Akademie der Wissenschaften. Bd. 24). Vandenhoeck & Ruprecht, Göttingen 1985, ISBN3-525-35921-7 (Zugleich: Regensburg, Universität, Dissertation, 1983–84 Digitalisat).
Elke Tkocz: Friedrich der Ältere, Markgraf von Brandenburg † 1536. In: Erich Schneider (Hrsg.): Fränkische Lebensbilder. Bd. 22, Würzburg 2009, S. 4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