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말의 정성공 시기에, 대만 북부는 원주민인 케타갈란족의 거주지이며, 타오위안 지구는 난칸시(南崁渓)를 경계로 남감사(南崁社)와 귀륜사(亀崙社)로 나뉘어 있었다. 청대의 1723년이 되면, 대만 북부에 담수청(淡水廳)이 설치되어 한족에 의한 개발이 착수되었다. 타오위안 지구에 최초로 진출한 한족의 기록으로서는 복건 장주의 남용의 기록이 남아 있다. 1727년, 가시나무가 군생했기 때문에 한족 취락을 호모장(虎茅莊)으로 부르게 되었다. 대규모 이주는 1737년에 객가인 설계륭에 의해 이루어졌다. 개발 지역은 귀산에서 도원을 거쳐 팔덕에 이르는 광대한 것이며, 공관은 도원에 설치되었고 주변에는 초점이라고 부르는 간이 상점이 처마를 나란히 했다. 개발이 시작된지 10년이 경과하면서 이곳에는 풍부한 밭이 펼쳐져 봄에는 복숭아가 흐드러지게 핀 것으로부터 1747년에 도자원(桃仔園)이라고 개칭되었다. 지명으로 사용된 仔자는 장주로부터의 이민자가 많은 것을 나타내 보이는 문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