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정신의 주베와는 달리 피토에프는 북극적 상상력과 국제적인 레퍼토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술가로서의 내적인 감동에 의해 극단적인 경제적 곤란을 보충하고도 남을 무대를 창조했다. 특히 체호프, 피란델로, 스트린드베리의 연출에는 따를 자가 없었으며, 부인과 함께 프랑스 극계(劇界)의 눈을 외국극으로 돌리게 하는 데 공헌했다. 극단은 루이 살르, 미셸 시몽 등 뛰어난 배우들을 포용하고 있었으나 재정난 때문에 상설극장을 가질 수가 없었으며, 다만 1934년부터 수년 동안 개설했던 객석 5백의 소극장 '마튜랑 극장'이 예외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