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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백작 오노레 가브리엘 리케티(프랑스어: Honoré Gabriel Riqueti, Comte de Mirabeau, 1749년 3월 9일 ~ 1791년 4월 2일)는 프랑스의 정치가, 사상가이다.
생애
미라보 후작의 아들로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냈으나, 계몽주의 사상에 감화되어 학자, 문필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제3신분인 평민의 대표로 국민의회에 나가 그 성립에 전력하였다. 박식하고 능란한 웅변으로 삼부회의 지도적 인물로 활약, 영국식 입헌 정치를 목표로 자유주의 귀족과 부르주아지를 대표하였다. 1791년 국민의회 의장이 되어,[1] 민권의 신장과 왕권의 존립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였으나, 왕궁에 매수되었음이 밝혀져 반역자로 낙인찍혔다. 무절제한 방탕한 생활로 건강이 악화되어 42세 되던 1791년 3월에 갑자기 사망하였다.[2][3]
저서
참고 자료
각주
- ↑ 알렉상드리앙 <에로티즘 문학의 역사> 강천 1997.12.10, p307
- ↑ 앙드레 모로아 <프랑스사> 기린원 1998.11.10 p310
- ↑ 알베르 마띠에 <프랑스 혁명사 (상)> 창작과비평사 1982.8.15, p157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