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섬에는 기원전 900년 이전부터 20세기 중반 아일랜드 공화국이 수립될 때까지 군주정체들이 존재했다. 연합왕국의 일부인 북아일랜드는 현재도 군주정이 유지되고 있다.
중세 성기이전에는 아일랜드 토착 민족인 켈트족게일인들의 여러 소왕국들이 존재했다. 12세기 말 노르만인의 아일랜드 침공으로 교황청의 봉신령인 아일랜드 영지가 설치되고 잉글랜드 국왕이 그 영주를 겸했다. 이후 잉글랜드에서 넘어온 노르만인들과 게일인들 사이의 투쟁이 이어진 끝에 16세기가 되면 잉글랜드의 영향력이 유지되는 지역은 오늘날의 더블린 일대만 남게 되었다. 1541년 아일랜드 의회가 잉글랜드의 헨리 8세를 국왕으로 옹립하면서 아일랜드 왕국이 수립되었고 잉글랜드 튜더 왕조가 아일랜드를 완전히 정복하면서 이후 아일랜드는 잉글랜드와 동군연합을 이루게 되었다. 1603년 스코트인의 왕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상속받으면서 스코틀랜드도 동군연합에 추가되었다. 1707년 연합법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위가 폐지되고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선포되면서 브리튼 섬의 두 왕국은 동군연합이 아닌 정치연합으로 탈바꿈한 반면 아일랜드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동군연합을 유지했다. 1800년 연합법으로 아일랜드 왕국이 폐지되고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선포되면서 아일랜드도 동군연합에서 정치연합으로 편입되었고 이 상태가 1922년 12월까지 유지되었다.
1922년 이후 아일랜드섬의 대부분은 연합왕국을 탈퇴,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했고 나머지 부분, 즉 북아일랜드는 연합왕국에 잔류했다. 1927년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으로 개칭한 연합왕국과 아일랜드 자유국은 조지 5세를 군주로 모시는 동군연합 관계를 1937년까지 유지했다. 조지 5세가 죽은 뒤 아일랜드 자유국은 신헌법을 발표하여 국명을 그냥 "아일랜드"로 바꾸고 헌법에서 군주에 관한 조항을 모두 삭제했다. 1949년 4월 아일랜드는 공식적으로 공화국임을 선언했다. 하여 1949년 4월 이후 아일랜드섬에서 군주정체를 유지하는 지역은 북아일랜드만 남게 되었다.
게일계 소왕국들과 지고왕
게일 아일랜드는 최소 5개, 최대 9개의 왕국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 왕국들을 쿠어거(아일랜드어: Cuaighe)라 했다. 각 쿠어거들은 내부적으로 수많은 소왕국들로 나뉘었고, 이 소왕국들을 투어허(아일랜드어: Tuatha)라고 했다. 코나크타, 알레흐, 아르길라, 울라, 미데, 라긴, 오스라거, 무운, 투어우완이 쿠어거들에 해당한다. 각 쿠어거는 게일 아일랜드 시대가 끝날 때까지 서로 싸우며 영토의 팽창과 축소를 반복했고 때로는 완전히 멸망해 다른 쿠어거로 대체되거나 두 개의 쿠어거로 분리되기도 했다. 각 쿠어거들의 왕을 리(아일랜드어: Rí)라 했고, 리들의 위에 아일랜드섬 전체의 명목상 지배자인 지고왕 아르드리(아일랜드어: Ard Rí)가 있었지만 지고왕의 역할은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었고 게일 시대 아일랜드는 단일국가였던 적이 없다.
상술한 쿠어거들 중 코나크타, 울라, 라긴, 무운의 이름이 오늘날 아일랜드의 4대 지방인 코노트, 얼스터, 렌스터, 먼스터의 유래가 되었다. 각 쿠어거들의 왕 목록은 개별 문서를 참조할 것.
윌리엄과 메리 부부는 1688년 명예혁명으로 잉글랜드 의회에 의해 잉글랜드 국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는 이들의 정당성에 도전이 이루어졌다(재커바이트의 난). 1689년 왕관 의회 인정법으로 윌리엄이 아일랜드 국왕이 되었고, 보인 강 전투에서 윌리엄이 승리하면서 확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