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풍댐 폭격은 1952년 6월 23일부터 6월 24일까지, 그리고 6월 26일부터 6월 27일까지 진행된 유엔 사령부 소속 공군이 한국 전쟁 중에 감행한 폭격전이다. 북한의 수풍댐을 주요 목표로 삼은 이 공격은 판문점에서 진행 중이던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정치적으로 압박을 가하기 위해 감행되었다.[1]
소련 공군과 주요 대공 시설이 수력발전소 일대를 방어하고 있었으며, 수력발전 시설 자체에 대한 공격은 1,514회 이루어졌다. 미국 공군, 미국 해군, 미국 해병대와 남아프리카 공군의 전폭기와 폭격기가 임무를 수행했으며, 첫 21개월 간의 공격에서 각각의 부대는 대규모 공습을 위해 협동했다. 시설 공격은 17일 후 북한 수도 평양에 대한 대규모 합동 공격 때 다시 폭격되었다.[2][n 1]
이 공격으로 수풍댐 시설 90%가 파괴되었고, 북한 전체의 전력이 2주 간 차단되었고 중국 동북부의 가용 전력도 23%로 감소했다. 그러나 북한은 댐을 복구했으나 1953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이전 수용력을 회복시킬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 영국 및 미국 의회에서 이 작전은 그다지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는데, 애당초 목적한 협상의 진전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52년 9월 12일과 1953년 5월 10일 및 6월 7일, 수풍댐에 4차례의 제한적 공격을 감행했지만, 수풍댐의 피해는 크지 않았고, 협상에도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했다.[3][4]
출처
각주
↑ 7월 11일, 정치적 동기가 강한 "프레셔 펌프 작전"이 개시되었고, 이 작전은 평양에 위치한 30개의 목표에 대한 공습이었다. 총 1,254회의 출격에 오스트레일리아 공군, 대한민국 공군, 영국 해군 공군단이 참여했고, 30개의 목표 중 28개가 파괴되었는데 이 중 3개는 완파되었다. 유엔 공군은 3대의 전폭기가 격추되었고, 8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 8월 29일 총 31개의 목표를 중심으로 1,403회의 출격이 다시 진행되었는데, 이 때 역시 3대의 유엔 공군 전투기가 격추되었다.(Futrell, USAF in Korea 1950-1953, p. 517 and 529)
참고
↑Futrell, The United States Air Force in Korea, p. 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