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년9월 17일에는 아버지와 함께 몰다비아의 프루트강(Prut) 인근에서 일어난 오스만 제국과의 체초라(Cecora) 전투에서 폴란드 군대의 일원으로 참전했지만 오스만 제국 군대의 포로로 잡혔고 2주 동안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억류되었다. 1622년에는 오스만 제국 당국에 몸값을 지불하면서 석방되었다.
1647년 12월에는 폴란드 출신 귀족과의 분쟁으로 인해 자신의 영지인 치히린과 모든 주도권을 빼앗겼고 비정규 카자크의 본거지였던 자포리자 카자크의 요새로 도망쳤다. 1648년자포리자 카자크의 최고 지도자인 헤트만으로 추대된 뒤부터 흐멜니츠키 봉기라고 부르는 무장 반란(1648년 ~ 1657년)을 일으켰다. 그의 무장 반란은 농민, 도시민, 성직자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으며 흐멜니츠키가 이끄는 군대는 조브티보디 전투와 같은 여러 전투에서 폴란드 군대를 격파했다.
흐멜니츠키가 이끄는 군대는 1649년 8월 폴란드군과의 즈보리우 전투에서 크림 타타르족을 지원하여 승리를 차지했고 같은 해 8월 17일에 체결된 즈보리우(Zboriv) 조약을 통해 자치권을 인정받게 된다. 이 조약은 사실상 흐멜니츠키가 독립적인 카자크 수장국을 수립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이었지만 농노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흐멜니츠키가 이끄는 군대는 1651년 6월에 일어난 베레스테츠코 전투에서 크림 타타르족의 배신으로 인해 패배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