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딘 칼리지 (영어 : Bowdoin College , )는 미국 메인주 컴벌랜드군 브런즈윅 에 있는 사립 리버럴 아츠 칼리지 다. 1794년 메인주 가 매사추세츠주 에 속해있던 시절에 대학 인가를 받았다. 오늘날 33개의 전공 과정과 다양한 부전공 과정을 제공하며 컬럼비아 대학교 , 다트머스 대학교 ,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 메인 대학교 와 공동 공학 과정을 시행하고 있다.[ 2]
보딘 칼리지의 주 캠퍼스는 캐스코만 과 앤드로스코긴강 인근에 있다. 주 캠퍼스 이외에 캐스코만 의 오어섬 에 118에이커 (0.48km²)의 해안연구소가 있으며[ 3] 펀디만 의 켄트섬 에도 200에이커 (0.81km²)의 과학기지가 있다. 또한 보딘 칼리지는 1821년 부터 1921년 까지 의과대학 인 메인 의과대학(Medical School of Maine)을 운영했다.[ 4] 2018년 보딘 칼리지는 《U.S. 뉴스 & 월드 리포트 》의 미국 리버럴 아츠 칼리지 순위에서 5위에 올랐다.[ 5]
보딘 칼리지에는 30여개의 운동부가 있으며 1913년 에 보딘 대학교의 동문인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 와 도널드 백스터 맥밀러 를 기리고자 북극곰 을 상징 동물로 정했다.[ 6]
역사
초기
보딘 칼리지는 1794년 매사추세츠주 의회에서 대학 인가를 받았고 그 뒤 메인주 의회의 담당으로 넘어갔다. 보딘 칼리지의 이름은 매사추세츠주 의 주지사였던 제임스 보딘 으로부터 따왔고, 그의 아들인 제임스 보딘 3세 는 초창기 보딘 칼리지의 후원자였다. 설립 당시 보딘 칼리지는 미국 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대학 이었다.
보딘 칼리지는 메인주 가 미주리 타협 의 결과로 독립된 주가 된 1820년대 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미국의 대통령 이 되는 프랭클린 피어스 와 저술가 너새니얼 호손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등이 이 시기에 보딘 칼리지를 졸업했다. 프랭클린 피어스 와 너새니얼 호손 은 정식 의용군 중대인 '보딘 사관 후보생'을 조직했다.[ 7]
보딘 칼리지는 설립 당시부터 정치 엘리트 들의 후손들이 다니고 메인주 의 부유한 보수주의자들에게 영합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8] 부근에 베이츠 칼리지 가 세워진 뒤로는 학문 및 체육 라이벌 관계가 만들어졌다. 19세기 초반에 보딘 칼리지의 학생들은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라틴어 와 고대 그리스어 , 지리학 , 대수학 을 공부하고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와 크세노폰 , 베르길리우스 , 호메로스 의 작품들을 읽어야 했다.[ 9]
해리엇 비처 스토 는 배우자가 보딘 칼리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브런즈윅 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을 썼고, 보딘 칼리지를 졸업한 미국 육군 준장 조슈아 체임벌린 은 보딘 칼리지의 교수였으며 1865년 북버지니아 군 이 애퍼매턱스 코트 하우스 에서 항복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 조슈아 체임벌린 은 명예 훈장 을 받았으며 나중에 메인주 주지사와 보딘 칼리지 총장이 됐다. 보딘 칼리지 출신의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존 앨비언 앤드루 는 제54매사추세츠 의용보병연대 를 창설했고, 윌리엄 P. 페선던 과 휴 맥컬록 은 에이브러햄 링컨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보딘 칼리지는 미국 남북 전쟁 이 벌어지는 동안 아메리카 연합국 및 노예제 와 많은 연관이 있었다.
20세기
뉴욕 에서 독점에 가까운 얼음 사업으로 1907년 공황 을 일으킨 월가 의 은행가 찰스 W. 모스 는 1877년 에 보딘 칼리지를 졸업했다.[ 10] 1916년 에는 킨제이 보고서 로 논란을 일으킨 곤충학자 이자 성과학자 앨프리드 킨제이 가 보딘 칼리지를 졸업했다. 1877년 에 보딘 칼리지를 졸업한 로버트 피어리 와 1898년 에 졸업한 도널드 백스터 맥밀런 은 각각 1908년 에 북극 을, 1908년 과 1954년 사이에 스쿠너인 보딘호를 타고 그린란드 와 배핀섬 , 래브라도 를 탐험했다. 보딘 대학교의 피어리–맥밀런 극지 박물관에서는 두 탐험가 를 기리고 있고,[ 11] 1913년 에는 보딘 칼리지의 상징 동물로 북극곰 을 정했다.
1954년 에 보딘 칼리지를 졸업한 조지 J. 미첼 은 1989년 부터 1995년 까지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냈고, 1962년 에 졸업한 윌리엄 코언 은 미국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1970년 에 보딘 칼리지는 입시에서 SAT 점수를 필수로 요구하지 않는 소수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 가운데 한 곳이 됐고, 1971년 에는 약 180년만에 처음으로 여성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또한 1997년 에는 프래터니티 를 없앴다.[ 12]
21세기
2008년 1월 18일 보딘 칼리지는 재정 지원을 받는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없애고 이를 장학금으로 갈음했다. 2009년 2월 에는 보딘 칼리지 졸업생이자 써브웨이 의 공동 창립자인 피터 벅이 1천만 달러 를 기부했고, 보딘 칼리지는 2억 5천만 달러 규모의 모금 운동을 성공리에 마쳤으며, 미술관을 개조하고 피터 벅의 이름을 딴 운동관을 새로 지었다.[ 13]
교육
보딘 칼리지의 가을 전경
보딘 칼리지의 학생들은 자연과학 과 양적 추론, 시각 공연 예술, 국제 시각, 사회적 차이의 탐구 분야에서 한 과목씩 들어야 하며, 1학년 세미나라고 부르는 글짓기 수업도 들어야 한다.
1990년 에 보딘 칼리지의 교수진은 등급의 중요성을 덜 강조하고 경쟁을 줄이기 위해 도입했던 기존의 최우등, 우등, 합격, 불합격 점수 체계를 A, B, C, D, F 체계로 바꾸었다.[ 14] 2002년 에는 플러스 와 마이너스 체계를 도입했다.
순위
보딘 칼리지는 2018년 《U.S. 뉴스 & 월드 리포트 》의 미국 리버럴 아츠 칼리지 순위에서 5위를 기록했다.[ 5] 2017년 《포브스 》의 미국 대학 순위에서는 23위를, 리버럴 아츠 칼리지 순위에서는 7위를 기록했다.[ 19] 보딘 칼리지는 2006년 에 《뉴스위크 》로부터 '리틀 아이비 '라는 평가를 받았고,[ 20] 2000년 에는 '히든 아이비 '라는 평가를 받았다.
입학
2018년 가을 학기에 합격한 신입생(Class of 2022)의 경우 합격률이 10.3%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U.S. 뉴스 & 월드 리포트 》는 보딘 칼리지의 입학 절차를 '가장 선별적'이라고 평가했다.[ 21]
저명한 동문
너새니얼 호손 과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 1825년 학사 졸업
정계에는 미국의 제14대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 , 게티즈버그 전투 의 승리에 이바지한 조슈아 체임벌린 , 미국 국방부 장관을 지낸 윌리엄 코언 ,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와 주한 미국 대사 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지낸 조지 J. 미첼 , 전 한국은행 총재 이자 서울특별시장 ,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을 지낸 조순 등이 있다.
과학계에는 킨제이 보고서 를 쓴 앨프리드 킨제이 ,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 등이 있다.
대중문화 의 경우 저술가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 너새니얼 호손 , 육상 선수 조앤 베노이트 , 넷플릭스 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 등이 있다.
각주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