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바리 해적( - 海賊, 영어: Barbary pirates, Barbary corsairs, Ottoman corsairs)은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서부지역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항구들을 거점으로 삼아서 활동하던 해적이나 사략(私掠, Corsair) 행위자들을 말한다. 사략(私掠)이란 민간인이지만 교전국의 정부로부터 적선을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자들이 무장한 민간 소유 선박을 이용하여 해상에서 강도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1][2]
베르베르인이 살고 있는 북아프리카지중해 연안 지역을 유럽인들은 바르바리(Barbary)[3]라고 불렀으며,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해적들을 바르바리 해적이라 하였다. 바르바리 해안을 거점으로 삼은 바르바리 해적의 약탈 행위는 지중해 전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서아프리카대서양 서부, 남아메리카, 대서양 북부 아이슬란드에도 확산되었지만 지중해 서부가 주요 활동 영역이었다.
바르바리 해적은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브리튼 제도, 네덜란드, 아이슬란드 해안에 위치한 마을을 습격해서 선박과 물자를 약탈했으며 주민들을 생포하여 노예시장에 팔아 넘겼다.
바르바리 해적의 습격은 무슬림의 정복을 계기로 시작되었지만 바르바리 해적이라는 용어는 16세기 이후부터 등장했다. '바르바리 국가'라고 불리던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자치권을 행사하였다. 모로코도 해적 활동을 비호했으나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았기에 바르바리 국가에 해당하지는 않았다.
바르바리 해적은 15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80만 명에서 125만 명의 유럽인들을 노예로 만들었는데 몇몇 노예들 중에서는 유럽에서 버려진 사람,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이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해군 제독을 역임한 바르바로스 하이렛딘 파샤는 16세기 초반에 알제를 지배한 해적이기도 하다.
1600년대에는 유럽의 해적들이 바르바리 해안에서 최신식 항해술, 조선술을 가져왔다. 바르바리 해적이 태평양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면서 17세기 초반과 중반에는 바르바리 해적의 최전성기로 여겨졌다. 17세기 후반에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등장한 강력한 해군이 바르바리 국가와의 경쟁 관계, 평화 관계를 수립하면서 선박에 대한 공격 행위를 중단시켰고 18세기 후반까지 해적 행위의 범위가 크게 축소되었다. 그러나 법률상으로 유효한 보호를 받지 못한 기독교 국가의 선박이나 해안은 19세기 초반까지 바르바리 해적의 피해를 받게 된다.
미국의 경우 독립 이전(1783년)에는 영국의 비호를 받아 바르바리 해적의 약탈로부터 보호를 받았으나 독립 이후에는 바르바리 해적들의 표적이 되었다.[4] 미국은 다수의 유럽 국가들처럼 바르바리 국가들에게 안전통행세를 지불하며 사태를 풀어나갔다. 그러나 1793년, 알제를 근거지로 한 해적들이 11척의 미국 상선을 나포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조지 워싱턴 정부는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5][6]1794년 3월 27일 미의회가 '미해군 무장법 1794'(Naval Act of 1794)를 통과시킴으로 사실상 미국 해군을 재건하였다.[7]
알제와는 협상을 통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어 무력 충돌은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동안 양 진영 간에 평화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1800년 들어 다시 문제가 발생하자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바르바리 해적 소탕작전을 펼친다.[8]제1차 바르바리 전쟁(1801년 ~ 1805년)과 제2차 바르바리 전쟁(1815년)에 승리를 거둔 미국은 그간의 피해를 보상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안전통행세 없이 지중해를 항해할 수 있는 조약도 체결하였다.[9] 신생 독립 국가가 거둔 예상 외에 결과에 대해 유럽 국가들은 강한 자극을 받았다.[9]
나폴레옹 몰락후 출범한 빈체제의 주도국인 유럽의 여러 강대국들은 지중해 내에서 자행되는 해적 활동을 근절시키자는 것에 합의하였다. 영국과 프랑스 연합함대가 원정을 통해서 이를 바르바리 국가들에게 통보하였다.[10] 1830년 6월, 프랑스가 바르바리 해적의 소굴 중 한 곳인 알제를 무력으로 점령한 후 식민지로 만들면서[11][12] 바르바리 전쟁 이후 남아있던 잔당들도 소멸되었다.
↑[네이버 국어사전] 16~17세기에 유럽에서 성행하였으나 1907년에 제2차 헤이그 평화 회의 결과 금지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르바리 [Barbary] (세계지명 유래 사전, 2006. 2. 1., 송호열) 아프리카 북서 해안 지역의 옛 이름.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서부가 여기에 속한다. 원주민인 베르베르 족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베르베르 인들은 자신들을 이마지겡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유인',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작은 아프리카' 또는 '아틀라스의 나라'라는 별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