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비지는 빅토리아 식민지(지금의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에서 태어나 1907년뉴질랜드로 이주했다. 노동자였던 그는 노동조합원이 되었고, 1910년에 오클랜드 트레이드 및 노동회의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새비지는 1916년7월뉴질랜드 노동당 창당을 지지했다. 그는 1919년 하원에 당선되기 전에 지역 정치에 적극적이었으며, 그 선거에서 8명의 노동당 의원 중 한 명이 복귀했기 때문이다. 새비지는 1933년에 노동당 당대표로 반대 없이 선출되었다. 그는 자신이 전 당을 대표하여 대변인으로 보았고 여러 파벌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새비지는 1935년 선거에서 노동당을 사상 첫 선거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정부의 경제 회복 정책과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그의 인기는 노동당이 1938년 선거에서 훨씬 더 중요한 선거 승리를 확신시켰다. 그의 정부는 1939년독일에 대한 선전포고에 동참했다. 새비지의 건강은 노동당의 두 번째 선거 승리 이후 급격히 쇠퇴했고 그는 결국 1940년3월 27일, 재임 중 사망하였다. 사후 총리는 피터 프레이저가 되었다.
흔히 뉴질랜드 복지국가의 건축가로 알려진 새비지는 일반적으로 학계와 일반 대중에게 뉴질랜드의 가장 위대하고 존경받는 총리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현재까지 그는 세 명의 군주(조지 5세,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를 섬긴 유일한 뉴질랜드의 총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