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실시된 러시아 연방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2008년 5월, 제3대 러시아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2012년 5월까지 러시아 대통령직을 수행하였다. 퇴임 직후 2012년 5월부터 2020년 1월까지 러시아 총리로 재직하였고, 2020년 1월 16일부터 신설된 러시아 연방안전보장회의 부의장으로 재임하고 있다. 2012년 5월 26일 통합 러시아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생애
1965년 9월 14일에 레닌그라드의 노동자 거주 지역인 쿠프치노의 흐루숍카에서 한 대학 교수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1982년에 레닌그라드 국립 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1987년 법학학사를 취득했다. 1990년에는 모교의 도슨트가 되어 1999년까지 9년간 민법과 로마법을 강의했다.
1991년에는 새로 선출된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의 새 이름)의 시장 아나톨리 솝차크의 법률 단체에 가입하였다. (다음 5년 동안, 메드베데프와 블라디미르 푸틴은 시청에서 함께 일하였다고 한다.)
솝차크 시장의 임기가 끝나자 메드베데프는 학문의 생활로 돌아갔다. 1999년 12월 31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사임하고, 총리였던 푸틴이 대통령 직무 대행을 시작하며 메드베데프를 그의 부하로 삼았다. 2000년 3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푸틴이 승리하자, 부수석 보좌관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에 러시아의 국영 천연 가스 회사인 가스프롬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3년에 그는 푸틴의 수석 보좌관으로 진급되었고, 2년 후에는 부총리가 되었다.
대통령 당선
2007년 12월 17일 푸틴 대통령이 후계자로 지목하였고, 2008년에 실시된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70% 이상의 득표율로 대통령직에 당선되었다. 2008년 5월 7일부터 임기가 시작되어 크렘린에 입주하였고, 푸틴은 총리가 되었다.
대통령 재임
전임자보다 더욱 민주적으로 여겨진 메드베데프는 대통령으로서 러시아의 경제와 사회를 현대화시키는 데 목표를 두어 석유과 천연가스에 국가 지분을 줄여나갔다.
메드베데프의 재직 동안에 러시아는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2000년 후반의 불경기로부터 회복되었다.
러시아의 수없이 겪은 문제 중의 하나로 부패가 선정되면서, 메드베데프는 반부패 운동을 일으키고 실질적인 사법 개혁을 실시하였다.
마치 재선을 노릴 듯하였으나, 2011년 9월 24일, 통합러시아당 전당 대회에서 전 대통령인 푸틴 총리를 집권당인 통합 러시아의 대선 후보로 추대한다고 발표하고 단임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쳤다.
외교 관계
외교적으로 메드베데프의 주요 성과는 2011년 러시아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시키고 브릭스(BRICS) 국가들과 러시아의 협력을 늘이는 것은 물론, 조지아와의 전쟁에 이어 심하게 긴장된 러시아-미국 관계의 재조인 새 전략 무기 삭감 회의의 조인을 포함한다.
2010년 11월 구 소련 시대를 포함해 러시아의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쿠릴 열도를 방문해 화제가 되었다. 2011년 1월 19일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말을 했다.[1]
푸틴과의 관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에서 함께 일을 하면서, 푸틴은 메드베데프를 개혁 성향의 관리로 분류하였다. 또 그는 젊은날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핑크 플로이드와 같은 록 밴드를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인기있는 서방 문화에 대한 그의 개방성은 크렘린 안의 보수파의 반발을 받았으나, 푸틴이 메드베데프를 후계자로 지목한 후에는 잠잠해졌다.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푸틴 정권보다 더 열린 자세로 서방을 대하겠다는 연설을 해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푸틴을 총리로 임명하여 사실상 이원집정부제를 실시하였고, 2012년 푸틴의 재집권 뒤 총리로 임명되어 내정을 담당하였다.
러시아 법률 저널에 박사 학위 논문을 주제로 두 개의 짧은 기사를 썼다. 그는 또한 1991년에 처음 출판된 대학 민법 교과서의 저자 중 한 명이다. 그는 2007년에 처음 출판된 "러시아 국가 발전의 질문"이라는 대학 교과서의 저자로, 사회 정책과 경제 발전에서 러시아 국가의 역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또한 "러시아 연방의 국가 공무원에 관한 연방법에 관한 논평"이라는 제목의 법률 논평 책의 공동 저자이다.
이 연구는 2004년 7월 27일 발효된 러시아 연방 공무원법을 학문적, 사법적, 실무적, 집행적, 그리고 시행과 관련된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한다.[2][3]
2008년 10월,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대통령 웹사이트에서 첫 번째 팟캐스트를 전달하였다.[4] 그의 비디오 블로그 게시물은 공식 라이브저널 커뮤니티 blog_medvedev에도 게시되었다.[5]
2011년 6월 23일, 메드베데프는 러시아 위키미디어 재단 지부와 함께 RIA 노보스티 국영 통신사의 "영원한 가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RIA 노보스티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이미지 100개에 대해 무료 라이선스를 부여했으며, 메드베데프는 RIAN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라는 이름으로 등록해 위키미디어 커먼스에 직접 사진을 업로드했다.[6][7]
2009년 4월 13일, 메드베데프는 노바야 가제타 신문에 주요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는 그가 러시아 출판사에 제공한 첫 번째 인터뷰였으며 시민 사회, 사회 계약, 공무원의 투명성, 인터넷 개발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었다.[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