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무신 성은(城隱) 남이흥(1567∼1627) 장군의 묘이다. 장군과 부인 하동 정씨, 장군의 아버지 남유의 묘가 한 자리에 모셔져 있다.
남이흥은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때 아버지가 왜적에게 총을 맞고 죽자, 학업을 포기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전념하여 선조 35년(1602)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 평안도 안주에서 청나라 군대와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자결하였다. 죽은 후에 충절의 인물로 여겨져 벼슬이 영의정으로 높여졌고 의천부원군으로 받들어졌다.
본래의 묘는 경기도 광주에 있었으나 1971년 충남 당진으로 옮겼다. 주변에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충신들에게 세우는 정문(旌門)이 세워져 있고, 장군이 사용하던 500여점의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봉분 아랫부분에는 묘를 보호하기 위해 둘레돌이 둘러져 있고, 묘 앞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망주석(望柱石)과 아직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모습을 한 용이 화려하게 새겨진 묘비가 있다.
현지 안내문
남이홍 장군 묘 일원
이 곳에는 조선 중기의 무신인 남이흥 장군, 부인 하동정씨, 부실 연안김씨, 부 남유, 남유 장군의 부인 전주유씨 등의 묘소가 있다. 이들 묘소는 원래 경기도광주군남한산성면 탄리에 있었으나 성남단지 조성 때인 1971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1]
경내에는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충장사)과 정려·재실 등이 있다. 남유 장군은 1598년정유재란 중 나주목사로 참전하여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남이홍 장군은 1602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연안부사가 되었고, 의춘군에 봉해졌다. 1627년정묘호란 때에 안주성에서 후금의 군대를 성안으로 유인하여 적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자신도 분사하였다. 그후 좌의정에 추증되고, 의춘부원군에 봉해졌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