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직공 국룡파(密直公 國龍派) : 평장사에 오른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한다. 그 후 후손의 기록이 없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후손 정석숭(鄭碩崇)을 1세조로 하고, 10세 정인지(鄭麟趾), 12세 정여창(鄭汝昌)으로 이어져 왔다.
정승공 응파(政丞公 膺派) :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도첨의 좌정승(都僉議左政丞)등을 지낸 정응(鄭膺)을 시조로 하고 6세 정희(鄭熙), 7세 정초(鄭招), 8세 정수충(鄭守忠), 9세 정세(鄭稅)로 이어져왔다.
지부사공 손위파(知部事公 遜位派) : 시조 정손위(鄭遜位)는 고려 숙종 때부터 명종 등 5왕조에 걸쳐 벼슬을 하여 정헌대부(正憲大夫), 지례부사(知禮部事), 응양대장군(膺揚大將軍),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하동백에 봉해졌다.
인물
정희(鄭熙) : 號 默隱, 포은 정몽주의 제자, 고려 우왕 진사시, 동년 문과 급제고려 진현관 직제학, 두문동 72현중 9정신, 광주 화담사, 장성 경현사, 화순 예산사 배향하였다.
정초(鄭招, ? ~ 1434년 ) :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고, 1407년 중시에 합격하여 이조판서 공조판서, 함길도관찰사, 예문관 집현전 대제학을 지냈고 경술년 농사직설 찬진, 역법, 회례문무악장, 삼강행실도 . 시호는 문경(文景), 광주 화담사, 괴산 문경사 배향하였다.
정인지(鄭麟趾, 1396년 ~ 1478년) : 1453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주도한 계유정변의 성공과 함께 좌의정에 발탁되고, 정난공신(靖難功臣) 2등에 책록되면서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에 봉군되었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정수충(鄭守忠, 1401년 ~ 1469년 ) : 博通經史로 영응대군 사부, 1450년(문종 1)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 사예, 하원군, 조선 최초의 14인의 봉조하중 한 분이며 의정부 좌찬성을지냈다. 시호는 문절(文節) 황해도 금천 영당, 청주 옥산 문절영당, 영동 청절사, 광주 화담사, 화순 예산사 배향하였다.
정봉수(鄭鳳壽, 1572년 ~ 1645년) :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약하고, 1634년 전라도병마절도사를 거쳐 부총관 겸 훈련도정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양무(襄武)
정상기(鄭相基, 1678년 ~ 1752년) : 영조 때 지리학자로 임진왜란 때 공헌하였다.
범현대가 정주영(鄭周永, 1915년 ~ 2001년) : 현대그룹 회장, 제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현대그룹 창업주로 대한민국의 자동차 산업과 경제를 이끌었으며, 국가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아들 정몽구를 이어, 손자 정의선 등에 이어 대대로 자동차 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범현대家로 불리는 거대 유력 재벌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아들 정몽구 회장, 정몽헌 회장, 정몽준 회장, 정의선 회장 등 자손과 친인척들 대부분이 대기업 집단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정몽준 회장은 김동조 제16대 외무부 장관의 영애와 결혼하였으며, 정의선 회장의 영애 정진희는 김덕중 제39대 교육부 장관의 영애와 결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