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에는 순회연극단을 조직하여 부산부를 시작으로 조선 전역을 순회하면서 연극과 음악회, 연설 등을 묶어 공연을 벌였다. 이 과정을 통해 홍해성은 연극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니혼 대학 예술과로 편입하여 졸업했다. 1924년에는 스키지소극장에 입단하여 배우 수업을 받았다.
1930년에 귀국하여 윤백남, 박승희, 김을한 등이 동인으로 포함때까지 동양극장에서 총 400편의 작품을 연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승방비곡》, 《검사와 사형수》, 《어머니의 힘》 등이 대표적인 흥행작이다. 본격적인 전문 연출가로서 한국에 근대극을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데 이어, 동양극장 이적 후에는 세련된 상업 연극으로 대중극의 수준을 격상시켰다는 평이 있다.
광복 후에는 1950년에 신극협의회 초대 회장으로 피선된 것과, 불교 성극을 몇 편 연출한 것 외에는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1957년에 국립극장에서 《신앙과 고향》을 연출한 것이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