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이름은
스페인어 이름입니다. 첫 번째 혹은 부계
성은 '
가라테' 이며 두 번째 혹은 모계 성은 '
오르마에체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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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에울로히오 가라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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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의 가라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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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José Eulogio Gárate Ormaech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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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44년 9월 20일(1944-09-20)(8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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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아르헨티나 사란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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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은퇴 (과거 스트라이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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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구단 |
출전 (득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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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1965 1965–1966 1966–1977 |
에이바르 인다우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023 0(14) 241 (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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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1965 1967–1975 |
스페인 U-23 스페인 아마추어 스페인 |
001 00(0) 001 00(0) 018 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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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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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에울로히오 가라테 오르마에체아(스페인어: José Eulogio Gárate Ormaechea, 1944년 9월 20일, 사란디 ~)는 스페인의 전 축구 선수로, 에이바르, 인다우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그리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에서 스트라이커로 활약하였다.
클럽 경력
가라테는 아르헨티나의 바스크인 부모 사이에서 나 스페인 에이바르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는 1960년에 에이바르에 입단하여 축구를 시작하였고, 1965년에 동료인 헤수스 마리아 페레다와 미겔 존스와 함께 인다우추로 이적하였는데, 아틀레틱 빌바오가 그를 주시하는 데에 논란이 야기되었지만, 존스의 경우처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루이스 아라고네스, 아델라르도, 하비에르 이루레타, 엔리케 코야르, 그리고 호세 우파르테와 함께 1960년대와 1970년대 아틀레티코의 전성기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가라테는 소속 구단이 라 리가를 3번,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를 2번 들어올리고,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진출하고 인터콘티넨털컵을 우승했다. 그는 뛰어난 골잡이로 1967-68 시즌부터 1969-70 시즌까지 3년 연속으로 피치치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1971-72 시즌과 1975-76 시즌의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결승전에서는 승부처가 되는 골을 집어넣었다. 그는 아틀레티코 소속으로 241경기를 출전해 135골을 기록하였다.
국가대표팀 경력
가라테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18번 출전하여 5번 골망을 흔들었다. 그의 첫 국가대표팀 경기는 1967년 10월 22일,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였고, 마지막 국가대표팀 경기는 1975년 4월 17일 루마니아와의 경기였다. 스페인은 이 당시 단 한번의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나 월드컵에 단 한 번도 진출하지 모했고, 그에 따라 그는 주요 국제 대회의 결승전은커녕 본선 경기도 치르지 못했다.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경력 통계
출처:[1]
수상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개인
같이 보기
각주
외부 링크